철강업계의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에 접어들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대형사들은 비핵심 자산과 계열사를 정리하고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몸을 가볍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체력이 버텨주는 곳에서나 가능한 법. 중소형사나 철강그룹 계열사들은 속속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절차를 밟으며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당분간 철강 시황이 살아나기 어려운 만큼 대형사의 몸집 줄이기와 한계기업의 퇴출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 계열사 디케이아즈텍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6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디케이아즈텍과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지만 회생이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에 법정관리로 방침을 바꿨다.
동국제강은 디스플레이용 사파이어 잉곳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2011년 디케이아즈텍을 인수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생산 효율 개선은 지지부진했고 업황도 바닥을 기며 디케이아즈텍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 들어서는 유동성 위기를 겪은 동국제강이 자회사에 대한 추가 지원이 힘들어졌고 결국 퇴출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동국제강은 지금까지 디케이아즈텍에 900억원가량을 투자했으며 대부분 손실 반영이 끝나 추가 손실 예상액은 약 5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국제강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본사도 팔고 포항 후판 공장도 폐쇄한 만큼 비핵심사업인 디케이아즈텍에 더 자금을 쏟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14일에는 동부제철이 자율협약을 접고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과 신규 자금 투입을 위해서는 워크아웃이 낫지만 그룹으로서는 안타까운 길이다. 동부제철 인수자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현대제철이 적극적으로 매수 의사를 보이지 않은 데 따른 조치다. 철강업계 맏형 포스코 계열사들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포스하이알은 새 주인을 찾고 있지만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플랜텍은 워크아웃에 돌입해 2019년까지 4년의 시간을 더 벌었지만 앞날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포스하이메탈은 최근 자본금 전액을 무상감자 처리한 뒤 포스코가 유상증자 시기와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다. 포스코가 7월 부실계열사 절반을 줄이겠다고 선포한 만큼 앞으로 3년간 20여곳이 더 정리될 예정이다.
중소형 철강사나 관계사들이 무더기로 퇴출 위기에 놓인 것은 자체 사업이 부진한 이유도 있겠지만 오랜 불황에 대형사들의 재무구조가 나빠진 이유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철강시장이 좋을 때는 대형사들이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투자하거나 인수합병(M&A)에 나섰지만 이제는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중국이 철강 설비를 대폭 늘리면서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가 철강 공급과잉을 겪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기는 더딘 회복세를 보여 철강시장은 좀처럼 나아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나마 '단비' 역할을 해줬던 철근조차도 중국산 철근이 싼 가격을 무기로 파고들면서 우리 업체들의 힘을 갉아먹고 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외 철강사 간 합병이나 설비 감축 등 업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업체별 이해관계가 복잡해 속도를 내기 어렵다"며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당분간 우울한 소식이 더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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