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일본의 3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와 혼다·닛산은 자국 내 수소 생태계 구축을 위해 손을 잡았다. 3개사가 오는 2020년까지 수소충전소 운영비 50억~60억엔(약 475억~570억원)가량을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이 주요 협력 내용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서로 경쟁자지만 수소차 시장을 키우고 다가올 수소경제시대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통합과 협업을 통해 신사업을 모색하고 신시장을 개척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특히 신사업은 위기에 빠진 제조업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같은 업종 내 다른 기업은 물론 다른 업종의 기업과도 과감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최근의 신사업은 투자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개별 기업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삼성그룹이 차세대 먹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바이오의 경우 신약 개발에 무려 10억~20억달러(약 1조1,000억~2조2,000억원)가 들어간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분야에 수년간 조 단위의 투자를 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 때문에 진입 초기에는 선행기업의 투자나 협업이 불가피하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 업체 IHS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친환경차 시장은 하이브리드가 500만대, 전기차가 100만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전기차는 판매 속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환경 문제에 예민한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폭스바겐 사태 이후 디젤차에 대한 신화가 깨지면서 전기차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그만큼 전기차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나 산업계 일각에서 "삼성과 현대자동차·LG가 손잡고 궁극의 전기차를 만들어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크게 봐서 이렇지 세부적으로 가면 더 많은 국내 기업들이 손을 잡을 수 있다. 전기차는 차체 경량화가 중요한데 포스코 같은 철강회사나 코오롱 등 신소재 개발 회사도 여기에 동참할 수 있다. 이미 반도체와 각종 전자부품은 삼성과 LG가 글로벌 톱 수준이다. 삼성SDI와 LG화학·SK이노베이션이 생산하고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도 국내 기업들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
물론 전기차 자체로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뒤져 있다. 지난 2010년 닛산이 선보인 전기차 '리프'는 전 세계 판매량이 벌써 18만대를 넘어섰다. 미국의 테슬라는 전기차 양산에 돌입했고 애플도 2019년께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중국 토종업체들도 빠른 속도로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한발 뒤진 우리가 선발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방안은 협업, 그것도 국내 기업 간에 손을 잡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들이 있는데 이들이 전기차를 함께 만들면 고용이나 국부 창출에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기업 동맹이 흔하다. 일본 자동차 3사의 수소충전소 보급을 위한 협업을 비롯해 글로벌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수소차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향후 수소차 개발과 성능 개량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상하게도 자국 기업 간 협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같은 것을 기업들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된다.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사물인터넷(IoT) 분야의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전자업체와 이동통신사 같은 대기업, 중소 가전업체 및 벤처업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향후에도 제조업은 상당 부분 자동차와 집을 중심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중국에서는 IoT 관련 기술과 기업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삼성 같은 대기업이 표준을 만들어야 우리도 따라 하겠다는 상황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열리게 될 무선충전과 모바일 시대를 감안하면 통합과 협업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업계 관계자들은 실생활과 정보기술(IT), IoT 분야 등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벤처를 키워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이들과 함께 기술개발을 해 나중에 과실을 나누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개별 기업이 모든 분야에 다 손을 댈 수 없고 혁신성 측면에서는 벤처기업을 따라갈 수 없는 탓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과거 개인휴대통신(PCS) 시절에 핸드폰 충전 규격이 제각각이었는데 삼성과 LG 등 국내 기업을 조율해 단일 충전기를 만들었다"며 "처음에는 기업들이 꺼렸지만 결국에는 소비자 편의가 높아지고 충전의 범용성 때문에 판매도 늘어나는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참조할 만한 협업 사례다.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