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 주제곡 ‘렛잇고(Let it go)’ 열풍을 몰고 온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기억하는가?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국내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겨울왕국’은 화려한 그래픽과 아름다운 노래로 뮤지컬 애니메이션 시장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극 중에 등장하는 ‘얼음공주’ 엘사의 화려한 드레스는 전 세계 꼬마 숙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엘사의 드레스가 할리우드 기술력이 아닌 국내 IT기업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주인공은 바로 국내 3차원(3D) 가상의류 제작 솔루션 기업 클로버추얼패션(Clo Virtual Fashion)이다. 3D 가상의류 제작 시장의 리더가 되겠다는 클로버추얼패션의 부정혁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콘텐츠 속 의상 제작은 클로버추얼패션(이하 클로버추얼) 솔루션이 활용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혁신적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IT기업이죠.” 클로버추얼 방문 전, 몇몇 IT업계 관계자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다. IT업계에서 클로버추얼은 ‘기술력 하나로 콧대 높은 할리우드 시장을 뚫은 회사’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9월 초,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클로버추얼 본사를 방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클로버추얼 사옥이었다. 우선 지하 2층, 지상 5층의 시크한 회색빛 건물의 디자인에 한번 놀랐다(이 건물은 부정혁 대표가 직접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설립 6년밖에 안 된 IT기업이 강남 한복판에 사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회사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품고 부정혁 대표를 만났다. 먼저 클로버추얼이라는 회사에 대해 물어봤다. 대체 뭐하는 회사일까? 부 대표는 말한다. “회사에 대한 정석적인 소개보다는 저희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해하기 더 수월하실 겁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당시 화제가 된 나이키 애니메이션 광고속 축구선수들의 의상, 의류 브랜드 디젤의 후드티, 프랑스 명품업체 L사의 명품백, 글로벌 가구 기업 이케아 브로셔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클로버추얼의 기술을 활용해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대충 감이 오시나요? (웃음)”
할리우드가 반한 클로버추얼의 기술력
간단하게 말하면 클로버추얼은 3D로 원단의 질감을 살린 가상 의상을 사실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고객층은 다양하다. 실제와 흡사한 의상을 표현하고 싶은 기업,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의상을 디자인하고 싶은 패션기업, 디자인에 소요되는 제작 시간과 비용의 절감을 원하는 제조회사, 의상 제조과정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 진행을 원하는 기업이 주 고객이다.
여기까지가 부 대표가 설명한 클로버추얼이란 기업의 정체성이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좀 더 세부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우선 클로버추얼이 알려지게 된 직접적 계기인 ‘겨울왕국’,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시장 진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부 대표는 말한다. “애니메이션 ‘슈렉’을 예로 들어볼까요? 만화 속 슈렉은 딱 한벌의 옷만 입고 나옵니다. 실사 영화였다면 의상비용은 거의 들지 않았겠죠.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다릅니다. 대다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초당 60개의 프레임을 사용하는데, 해당 프레임마다 의상을 각각 모델링해서 표현을 해야 하죠. 말이 쉽지 엄청난 작업이 필요합니다. 한 프레임마다 캐릭터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의상의 질감을 일일이 그려내야 하니까요.”
사실 이 같은 문제는 할리우드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공통적 고민이었다. 제작비 대부분이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 사용되는 만큼, 제작비 절감을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준 솔루션이 바로 클로버추얼이 개발한 엔터테인먼트 분야 가상 의류 제작 솔루션 ‘마블러스 디자이너 (Marvelous Designer)’였다. 실제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클로버추얼의 마블러스 디자이너 도입 이후 제작비 절감뿐 아니라 의상 CG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마블러스 디자이너는 비단 애니메이션 제작에만 쓰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제작 스튜디오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웨타( Weta) 스튜디오도 클로버추얼의 솔루션을 눈여겨봤다. 웨타 스튜디오는 ‘반지의 제왕’의 스핀오프 (Spin-off·원작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만 다른 주인공과 이야기로 꾸며지는 콘텐츠) 영화인 ‘호빗’ 시리즈 제작 과정에 클로버추얼의 마블러스 디자이너를 사용했다. 이는 할리우드 시장에서 마블러스 디자이너, 그리고 클로버추얼이 알려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해외 패션업계에서 먼저 알아본 클로버추얼패션
클로버추얼의 주력 사업영역은 엔터테인먼트 CG 분야가 아닌 패션시장이다. 시장에 널리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은 분명 ‘ 겨울왕국’ 과 ‘ 호빗’ 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클로버추얼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알아본 시장은 바로 ‘명품 패션’ 시장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L사는 클로버추얼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먼저 연락을 취한 대표적 기업이었다. 부 대표는 말한다. “클로버추얼패션은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아무래도 국내보단 해외시장이 조금 더 빨랐죠. 물론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국내 패션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3D 기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죠. 그때 해외 기업들은 이미 3D 기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L사의 경우가 대표적이었죠.”
클로버추얼과 부 대표는 실제 의류업체에서 옷을 제작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클로3D(CLO3D)’라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하지만 부 대표의 말처럼 국내 시장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글로벌 시장에서 활로를 뚫기 위해 무작정 솔루션 데모 영상을 동영상 검색 사이트 ‘유튜브(Youtube)’에 올렸다. 마땅한 마케팅 채널이 없는 상황에서 꺼내 든 궁여지책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프랑스 명품업체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L사 제품의 디자인에 클로3D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L사와의 제휴는 잇달아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글로벌 패션기업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나이키, 디젤 등 대형 기업에서 앞다퉈 클로3D를 도입했다. 이후 패션 기업뿐 아니라 디자인 작업이 필요한 수많은 기업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다국적 리빙용품 브랜드 이케아(iKea)에선 자사 카탈로그 제작과정에 클로3D를 도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니의 콘솔게임 플레이스테이션을 포함한 게임업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부 대표는 말한다.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클로3D를 도입한 기업들이 저희 솔루션을 활용해 디자인하는 전 과정을 데모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발적으로 말이죠. 역시 기술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차별화된 기술력은 어떠한 마케팅 기법보다 앞설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가상 패션 분야에서 클로버추얼은 글로벌 톱(Top)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시장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사업화를 준비한 부대표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D의 상의 미래를 확인하다
부정혁 대표는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평소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던 부 대표는 졸업 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를 창업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또 다른 아이템을 찾던 부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3D 기술을 활용한 의상 시뮬레이션이었다. 부 대표는 말한다. “저와 함께 클로버추얼을 공동 창업한 오승우 대표는 카이스트(KAIST)에서 오랫동안 3D 의상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한 분이에요. 전자상거래가 앞으로 장래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꾸준히 기술 개발에 몰두했고, 석·박사 학위도 그 기술을 기반으로 받았죠. 때 마침 오 대표가 3D 의상 시뮬레이션 기술의 상용화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확신이 생겼죠. 이 분야에서 거대한 수요가 발생할 것이란 직감이 들더군요.”
오 대표와 의기투합한 부정혁 대표는 2009년 클로버추얼을 창업하고 시제품 개발에 나섰다. 우선 방향성을 설정해야 했다. 3D 패션 기술의 활용처가 다양했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 집중할 필요성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주변에선 패션보다 CG 분야를 추천했다. 패션과 3D의 조합은 시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당시 평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패션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궁극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패션이라는 거대 시장을 사로잡을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방향을 설정하자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즉각 IT 개발자 외에 패션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패션에 대한 지식 없이 의상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부 대표는 “저희의 개발 철학은 사용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제공하는 것”이라며 “디자이너 팀을 통해 사용자를 분석하고, 개발된 프로그램의 테스트와 사용자 피드백 반영을 통한 제품 개선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디자이너들과 개발진의 노력, 거기에 오 대표의 기술력과 부 대표의 디자인 노하우가 결합한 클로버추얼의 시제품이 창업 6개월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 대표는 말한다. “시제품 개발 이후 꾸준한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상용화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갔습니다. 고객들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수정을 거듭하면서 완전한 솔루션을 탄생시킬 수 있었죠. 하지만 저희의 당면 목표는 솔루션 개발보단 솔루션을 통한 시장 개척이었습니다. 창업 6년 만인 올해를 기점으로 시장 개척의 한 고비를 넘겼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부 대표의 말처럼 클로버추얼은 3D 패션이라는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조금씩 3D 가상의류 솔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부 대표는 “작년부터 국내 기업들의 반응이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이전에는 3D 소프트웨어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품었지만, 지금은 프로그램의 효용성을 따져보고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코오롱스포츠, 세정그룹 등 국내 유명 패션기업들이 클로버추얼의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
‘클로 2.0’ 시대 열어 가상의상 유통 플랫폼 구축한다
최근 클로버추얼은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에 현지 지사를 설립했다. 현재의 성과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탄력을 붙이겠다는 것이 지사 설립의 목적이다.
부 대표는 해외 지사 설립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 고객들이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 있다 보니 정서적인 공감이나 커뮤니케이션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회성 판매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 파트너십을 가져 가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 문화, 지리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소통과 공감을 위해 지사 설립을 시도하게 됐습니다. 해외 지사 설립을 통해 매출까지 늘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당장은 고객과의 원활한 소통이 최우선 목표입니다.”
올해 클로버추얼의 예상 매출은 약 100억 원 안팎이다. 초창기와 비교하면 큰 폭의 성장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고객사의 규모를 고려하면 그리 높은 매출이 아니라는 것이 클로버추얼과 부정혁 대표의 자체 평가다. 부 대표는 당분간 매출보다 보급에 더 초점을 맞추고 활동 무대를 넓히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부 대표는 말한다. “단기적으론 더 많은 사람이 저희 솔루션을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또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품이라 가격이 높은데, 사용자층을 넓히기 위한 보급형 제품 개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론 단순히 가상의상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벗어나 가상의상 콘텐츠의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희는 내부적으로 이 단계를 ‘클로 2.0’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저희 솔루션의 보급을 위한 1.0 단계를 밟고 있는 셈이죠. 기술력을 높여 사용자를 확대한다면 충분히 저희 클로버추얼이 가상의상 시장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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