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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1·4분기 잠정실적이 공개된 7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는 새벽부터 긴장감이 역력했다. 시장에서는 '이만하면 선방'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이날 출근길을 재촉하는 주요 임직원들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이날 만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어닝 서프라이즈라는 말도 나오는데 잘못된 평가"라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반적인 내부 분위기"라고 말했다. 시장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런 위기감의 배경에는 스마트폰·반도체·가전의 삼각편대를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 먹거리 사업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초조함이 깔려 있다.
지난 2013년 3·4분기에 달성했던 영업이익 10조원대의 벽을 다시 한 번 깨기 위해서는 신사업 발굴에 속도를 내야 하는데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난해 말 경기 용인 인력개발원에서 50여명의 사장단과 위기 극복 및 신성장동력 확보를 주제로 세미나를 여는 등 묘책 찾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마트폰 쏠림현상 줄여야=삼성전자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가 2010년 첫 출시 이후 세계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최대 판매량을 기록한 갤럭시S4가 출시된 2013년에 삼성전자가 분기별 최대 실적을 낸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대한 쏠림현상은 역설적으로 향후 삼성이 풀어내야 할 과제로도 꼽힌다.
갤럭시S6 같은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삼성이 압도적인 기술격차를 뽐내고 있지만 시장 자체는 점차 포화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 탓이다.
실제로 2014년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액 206조2,059억원에서 IM(IT·모바일)부문의 매출(111조7,645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4%에 이르렀다. 영업이익의 쏠림현상은 이보다 더 심해 전체 25조250억원의 영업익 중 IM부문(14조5,620억원) 비중이 58%에 이르렀다. 영업이익의 경우 지난해 갤럭시S5의 부진과 반도체부문의 약진이 겹쳐 70%선에 육박하던 전년과 비교해서는 개선됐으나 여전히 황금비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과 애플은 각각 어느 정도 분리된 '팬보이(열성고객)'를 거느리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스마트폰의 평균 교체주기가 2년인 점을 감안하면 제품의 질과 관계없이 IM부문의 실적이 매년 일정 수준 요동을 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반도체처럼 꾸준한 실적을 더 해줄 수 있는 안정적 사업군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스마트헬스케어 사업 성과 낼까=신성장동력 발굴도 과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말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스마트헬스케어 사업이 삼성의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안에 건강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을 심어 실시간 체크를 하는 식으로 정보기술(IT)과 바이오의 융합을 이뤄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는 뜻이다.
사실 의료부문에 대한 삼성의 관심은 201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건희 회장은 그해 7월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LED 등을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지목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부분에 대한 실적이 여전히 미미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2011년 인수한 의료기기 업체 삼성메디슨의 실적을 보면 지난해 영업이익이 37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12% 떨어지며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265억원에서 88억원으로 급감했다. 이와 별도로 삼성전자에는 의료기기사업부가 있는데 회사 측은 이 사업부의 실적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의료부문 등은 당장 수익을 내기보다 앞으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부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삼성전자가 최근 내놓은 기업 간 거래(B2B) 브랜드인 '삼성비즈니스'를 비롯해 시장 확대를 꿈꾸고 있는 프린터·디지털카메라 등도 앞으로 눈에 띄는 실적을 내야 할 사업들로 꼽힌다.
앞으로 대대적 투자와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는 점을 볼 때 곳간에 쌓아둔 실탄이 두둑하다는 점은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과 단기성 금융자산 등을 더한 현금성 자산은 약 62조원으로 전년 대비 13% 이상 늘었다. 지난해 실적이 악화하는 와중에 허리띠를 졸라매 소모성 비용을 줄여 새는 돈을 잡았기 때문이다. 혁신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R&D 투자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대목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R&D 비용은 총 15조3,255억원으로 전년 대비 3.7%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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