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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과 시민의식
입력1998-12-20 00:00:00
수정
1998.12.20 00:00:00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를 이러한 고통에 빠뜨린 기업들의 과다부채, 금융산업의 후진성, 정부의 비효율성 등 여러 요인들에 대한 올 한해 동안의 구조조정 작업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정부·기업·금융기관들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수입된 사람들도 아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 중의 한 부분이며 우리 시민들과 함께 사는 우리 시민들의 이웃이다.
때문에 정부의 정책 책임자들,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경영자들이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개인적 욕구충족에 바탕을 두고 의사결정을 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무관했다고 보기 어렵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성공했던 것은 18세기 영국 시민들의 자유주의 정신 때문이었고,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세기 미국 시민들의 청교도 정신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고, 2차대전 이후 일본이 다시 경제강국으로 일어서게 된 것은 일본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덕분이었다.
우리가 구조조정을 통하여 새로운 정부·기업·금융기관의 틀을 갖춘다 하더라도 우리 시민들의 의식이 과거와 달라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틀의 운용은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경제의 밝은 앞날을 위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구조가 전환돼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본다.
경제성장과 소득증대를 지상의 목표로 설정하고 지난 30여년을 살아온 결과, 우리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높이 평가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치관의 왜곡은 법·제도·질서를 지키려는 의지를 크게 약화시켜왔다. 시장경제에 있어서 경기규칙(RULE OF GAME)을 준수하는 것은 기본질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질서를 깨뜨리는 자들이 더 큰 소득과 부를 획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은 우리 시민들의 질서의식을 크게 약화시켰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비용은 국민소득의 2.3%나 되며 이것은 선진국의 2배 이상에 달한다. 교통사고를 무질서의 한 상징으로 볼 때 우리의 무질서 관행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회계장부를 국제사회에서 믿지 않는 것도 우리 사회의 무질서의 정도가 어느 정도 심한지를 나타내는 주요 사례이다. 우리에게는 회계준칙이 잘 마련되어 있으나 기업도, 회계 전문가들도, 심지어 은행이나 정부관련 기관들까지도 이 준칙을 엄격히 지키려는 의식이 부족했다.
정부조직 축소, 재벌의 업종전문화, 금융기관의 건전화 등 구조조정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무질서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실질적 성과는 미미할 것이다.
소위 연고관계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의식도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지연·학연 등 각종 연고에 의한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최근의 KDI 조사에 의하면 경제활동에 있어서 경쟁과 연고 중 연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응답자의 42%를 차지했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효율성과 책임의식에 바탕을 둔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질서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재벌계열 기업들의 상호보조, 부당 내부거래, 금융기관의 청탁에 의한 대출, 정부 규정의 정실에 따른 적용 등은 모두 연고를 중시하는 의식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이러한 연고를 중시하는 관행이 지속될 경우 구조조정의 외형은 마무리될지 몰라도 그 내면은 텅 비어 있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평등의식도 문제다. 우리는 민주자본주의라는 정치·경제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그 장점으로 하고 있고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정치적 평등을 강조한다.
그런데 바로 이 정치적 평등의식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과 갈등구조에 있을 수 있다. 사촌이 유능하고 부지런해서 논을 사게 된 것을 알면서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미묘한 심정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하에 움직이고 있다. 배가 아프더라도 유능함과 부지런함을 존중해주는 질서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배가 아픈」 사람의 마음도 달래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유능함과 부지런함을 존중하는 테두리 내에서 그 아픔을 치유해준다는 원칙을 망각한다면 우리 모두 함께 못 사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업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특히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해에는 경제 구조조정이 의식구조의 선진화와 병행됨으로써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경제체질이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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