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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가 화났다/강지원 청소년보호위원장(로터리)
입력1997-11-24 00:00:00
수정
1997.11.24 00:00:00
강지원 기자
MBC TV는 매주 일요일 저녁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이경규가 간다」 코너를 방송한다. 청소년에게 술·담배·성인용잡지 등을 파는 지 살펴 제대로 법을 지키는 업소를 찾아 양심가게 간판을 달아주고 상품(?)으로 냉장고까지 기증한다.청소년상대 코미디인데도 시청률이 항상 40%를 훨씬 웃돌 정도다. 반응도 다양하다. 방송국 뿐 아니라 청소년보호위원회에도 개탄과 격려의 전화가 빗발친다. 안 지키는 업소는 건물임대주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속출한다. 청소년들 보기에 너무 부끄럽다는 반성파, 극형에 처하라는 흥분파도 많다. 성남시에서는 아예 양심간판 달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방송쪽에서는 코미디프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는 평도 있다. 소위 「에듀테인먼트」가 성공할 수 있는 희망을 보였다는 것이다.
청소년보호 문제가 이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노력에 힘입어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거꾸로 된 일이 아닌가 싶다. 소수의 법 안지키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일이 정상이지 반대로 지키는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진짜 코미디」인 셈이다.
정말 법을 안 지키는 업소가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모처럼 양심가게가 나타나면 그 조그만 촬영버스안은 온통 환호성으로 뒤덮이곤 한다. 이경규의 목소리도 시시각각 돌변한다. 성공인 듯하면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온 몸을 흔들며 기뻐한다. 반면 실패다 싶으면 목소리까지 착 가라앉고 완전히 「김샜다」는 표정으로 우거지상(?)을 쓴다.
이경규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양심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갑갑해 죽겠다」고 넉살을 부렸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데 밤새 길바닥을 싸돌아 다니며 실패를 거듭할 때면 왜 속상하고 화가 나지 않겠는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앞설 때가 많다.
이 방송은 곧 종영되겠지만 정 안되면 「이경규가 화났다」 코너라도 만들어 그의 화난 모습만 골라 보여주면 어떨까. 코미디같은 생각에 혼자 웃음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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