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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스웨덴의 R&D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63%에 육박했다. 이는 세계 2위 수준. 당시 유럽 평균에 비해 두 배 가량 많았다.
그렇다면 이같은 스웨덴의 과감한 R&D 투자는 짭짤한 성과를 거뒀을까? 답은 '아니오'다. 시장과 동떨어진 기초과학 중심 R&D 전략은 실패로 귀결됐다. 분석 결과 스웨덴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인 볼보(자동차), 에릭슨(통신), 일렉트로룩스(가전제품) 등의 기업 경제력은 오히려 하락했으며, 일자리 창출 효과 역시 미미했다. 과학기술 정책이 기초 연구에만 치중하느라 실제 소비자 수요와 관계 있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실패하고 실험실속 R&D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산업 현장과 괴리된 R&D 투자를'스웨덴 패러독스'라 부른다.
스웨덴의 실패는 창조경제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반면교사다. 기초과학·원천기술만을 중시하는 연구개발(R&D)로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기 어렵다는 것. 사회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만큼 소비자 감성이나 시장의 트렌드도 함께 변한다.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인 전문가이자 컴퓨터 공학자인 존 마에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총장은 "20세기를 먹여 살린 주체가 과학기술자들이었다면, 21세기는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는 창조경제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디자이너란 단순히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적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기술과 결합할 때 새로운 비즈니스 가능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얘기다.
경기침체로 인해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예상되고 복지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확대되면서 창조경제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기존 산업구조의 단순 고도화만으로는 현재의 일자리 부족 현상이나 미래 국가 성장동력 부재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서다.
실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선진 기술을 모방한 제품 개발과 생산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쟁 우위로 휴대폰, 조선, 디스플레이, 메모리반도체 등 주력 사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의 급부상과 신흥국의 추격으로 성장의 한계에 부닥친 실정이다. 새로운 기술 혁신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창조경제란 제조업ㆍ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첨단 융합기술에 창의력을 더해 미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이를 통해 고부가가치를 만들거나 또 다른 새로운 시장ㆍ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를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정보기술을 산업에 접목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개념인 '창조경제'를 거듭 강조했다.
창조경제의 핵심 요소는 크게 독창성·예술적 감성을 가진 창의적 인적 자본과 신산업 발굴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로 요약할 수 있다. 창조산업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분야는 바로 정보통신기술(ICT), 소프트웨어(SW), 문화 콘텐츠, 녹색(친환경) 관련 산업 등이다. 이 산업군들은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기술에 무형의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방식을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응용기술 R&D에 매진해 연구성과가 신산업 창출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산업기술 분야 R&D의 경우에는 연구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이 기술을 어떻게 응용하면 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산업 현장, 시장과 유리된 'R&D를 위한 R&D'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초연구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창의성 중심의 R&D, 산업 현장과 소통하는 R&D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가 산업기술 R&D 정책이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과학기술 R&D와 산업기술 R&D의 시대적 역할을 조화롭게 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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