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족쇄가 될 수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 운용사 13곳과 5개 증권사에 대한 프라임브로커(PB) 적격 통보가 마무리되면서 국내 헤지펀드 1호 상품 출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업계는 그러나 새 사업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듯한 표정이다. 시장 안정성을 이유로 초반부터 촘촘한 규제를 들이댄 탓에 크기도 전에 시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해외 헤지펀드는 기본적으로 개별 펀드 매니저를 중심으로 자율(최소한의 규제) 속에 성장해온 '시장의 산물'인 데 한국형 헤지펀드는 금융 당국 주도하에 만들어진 규제의 산물"이라며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턱없이 높은 투자금액 기준=한국형 헤지펀드는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참가 자격부터 깐깐했다. 먼저 개인 투자자가 헤지펀드에 투자하려면 최소 5억원 이상 투자해야 한다. 운용사는 펀드ㆍ일임재산 수탁액이 10조원 이상, 증권사는 자기자본 1조원 이상, 자문사는 일임재산 5,000억원 이상이 있어야 한다. 시장 초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줄인다는 게 규제의 명분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문턱이 한국형 헤지펀드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A자산운용사의 헤지펀드 담당 임원은 "기관들이 초반에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의 최소 투자 금액도 5억원으로 제한됐다"며 "초기 투자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무리 재간접 투자는 1억원부터 할 수 있다지만 외국처럼 1만개가 넘는 헤지펀드 중 몇 개를 골라 간접투자를 하는 것과 12개에 불과한 한국형 헤지펀드 중 몇 개를 골라 투자하는 것은 다양성이나 수익률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투자금액 기준 완화를 주장했다. ◇높은 진입장벽이 경쟁력 까먹을 수도=지나치게 높은 운용사 인가 요건과 규제 일변의 투자환경이 한국형 헤지펀드 경쟁력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운용업자로 인가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국내 금융투자업 영업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 중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회사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 이미 금융투자업자로 영업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인들은 트랙레코드 미비로 국내에 법인을 설치하더라도 영업권인가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도적인 진입장벽 외에도 한국형 헤지펀드가 행정적인 편의나 세제혜택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형 헤지펀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자산운용 시장은 수탁액이나 전문인력 부족으로 차별화된 운용보다는 운용보수 인하 위주의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며 "자산운용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헤지펀드 진입규제를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꿔 운용 능력, 상품 차별화 등에서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 넘으니 또 규제=업계에서는 헤지펀드 운용부서와 비 헤지펀드 운용부서 간 공간ㆍ임직을 철저히 분리하도록 한 모범규준에 대한 불만도 크다. 금융 당국은 성과보수가 있는 헤지펀드 특성상 그렇지 않은 일반 공모펀드와 분리를 철저히 하지 않을 경우 이해상충이 발생될 수밖에 없어 엄격한 '차이니스월(Chinese wall)'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걸음마 아이에게 마라톤 규칙을 가르치고 있다"는 반응이다. 인가요건 미달로 헤지펀드 신청을 하지 못한 B운용사의 한 임원은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분리를 해 이해상충을 막아야겠지만 사업이 얼마나 성장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별도 조직과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배보다 큰 배꼽을 만들라는 것"이라며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형사를 제외한 중소형 자문사가 분사 수준의 조직 분리를 과연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규제도 속도조절 필요=업계와 전문가들은 시장 초기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그 추진에 있어 탄력적인 강약조절이 필요하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김 연구위원은 "차이니스 월을 통한 이해상충 방지나 정기적으로 투자전략 등을 당국에 보고하도록 한 금융투자업 규정 시행세칙 개정안 등 일부 헤지펀드 관련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헤지펀드 초기 정착에 필수인 것들"이라며 "무조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가 요건 완화나 펀드 설정ㆍ등록에 필요한 행정 절차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등 제도의 탄력적인 보완을 통해 한국형 헤지펀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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