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연구원에 용역을 줘 '중도상환 수수료 체계 개선방안'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다돼 가지만 시중은행들은 수수료를 내리는 데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다. 올 들어 가계 대출이 27조7,000억원이 증가하는 등 빠르게 느는 상황에서, 중도상환 수수료가 대출 상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중도상환 수수료율을 낮추기로 방향을 잡았지만 아직 구체적 안을 확정하지 못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수수료율을 내리기 위해서는 수익 외에도 '대출 갈아타기' 증가분 등에 대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데 아직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수수료 인하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를 만드는 작업 때문에 이달 말이나 일러야 내년 초에나 수수료 인하안이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금융위에서도 관심을 계속 가지는 만큼 중도상환수수료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아직 세부 작업이 완료되지 못했지만 가능한 빨리 수수료율을 낮추려 한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담보권 설정 등과 관련한 비용 때문에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하고, 신용대출 상품은 수수료를 낮추기로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대출 상품에 대한 차이를 두는 등 상품별로 수수료율을 달리하기로 했지만 정확한 인하 수치는 아직 조율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대출금의 1.5~1.6% 정도를 중도상환 수수료로 부과하고 있으며 국민은행이 가계 신용대출 상품에 부과하는 0.7%의 수수료율이 시중은행 중 가장 낮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들이 중도 상환 수수료 인하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몇몇 시중은행은 수수료 개선방안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수수료 인하와 관련한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하는 등 사전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 은행은 중도상환수수료율 인하가 '제살 깎아먹기 식' 방안이라는 점에서 굳이 타행보다 먼저 인하안을 발표하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타행보다 먼저 수수료를 낮출 경우 인하폭 등에 대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중은행이 중도상환 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익은 1,767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금융위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가 지난달 금융연구원 세미나 이후 중도상환 수수료와 관련한 언급이 없다"고 밝히는 등 추가적 압박이 있기 전까지는 굳이 수수료 인하에 나서지 않을 태세다. 반면 금융위는 시중은행들에 일괄적으로 수수료를 낮추라고 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우려, 은행들이 알아서 움직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들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어 상황을 보고 있다"며 "은행들도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당국의 우려를 알고 있는 만큼 조만간 수수료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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