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복지 및 통일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여야정 간 세금전쟁이 다시 불붙게 됐다. 여당과 정부는 시기상조이거나 불가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야권은 이를 계기로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 인상론에 한층 탄력을 붙일 기세다.
21일 정부와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전일 김 대표의 증세 발언을 놓고 진의를 파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의 증세론 주장은 정부와 사전교감 속에 이뤄진 게 아니었다"며 "중장기적으로 세원확충을 해야 한다는 일반론을 강조하려는 의미인지 아니면 현 정부 임기 내 주요 세목의 세율을 올리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곤혹스러워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의 한 새누리당 중진의원도 "현재 조세정책에 대한 우리 당의 입장은 세율인상을 통한 직접 증세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김 대표의 발언으로 우리 당이 야권의 증세론에 말려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난처해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당료는 김 대표가 앞으로 국회 전략 차원에서 증세론을 빅딜카드로 쓸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추진 중인 각종 제도개혁 법안들이 야당의 반대로 막혀 있고 이외에도 각종 정무적인 현안들로 정국이 난기류에 휘말린 만큼 증세를 협상카드로 삼아 정국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혹은 김 대표가 향후 대선국면 등을 겨냥해 '증세 없는 복지'를 표방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려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야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발언의 배경이야 어찌 됐든 조세정책을 둘러싼 격랑은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김 대표가 증세론의 논거로 든 적정 조세부담률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는 복지 선진국인 독일·영국 등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낮다며 세금을 더 거둬 복지재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조세부담률은 2012년 현재 20.2%로 영국(27.8%), 핀란드(30.9%), 스웨덴(38.6%), 덴마크(46.9%)보다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26.2%로 우리나라를 웃돌고 있으며 독일의 조세부담률 역시 2011년 현재 23.0%에 이른다. 김성욱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적정조세부담률은 25.8~26.5%수준이며 조세부담률을 0.7~1.4%포인트 정도 올려 약 8조2,000억~16조4,000억원가량 조세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다면 조세부담률의 단순비교는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낮은 이유는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이 낮아서라기보다는 비과세·감면혜택이 과도해 세금을 안 내는 납세자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1년 현재 근로자 중 면세자 비중은 36.1%에 달한다. 근로자 약 3명당 1명이 세금을 안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근로자들이 받는 한해 총급여의 63%가량이 아예 과세 대상에서 빠지고 있다는 게 세정 당국의 분석이다. 근로자보다 소득 포착이 더 어려운 자영업자까지 포함한다면 명목세율만큼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소득세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산된다. 이 밖에도 탈세 등 지하경제를 통해 새고 있는 부가가치세·법인세·소득세 등까지 감안할 때 세율만 올린다고 세금이 더 걷힐 것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대표의 발언이 정부 경기부양 기조와 엇박자로 읽힐 수 있다는 점도 딜레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증세론이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불가론을 펴왔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우리나라가 한 해 거둬들이는 법인세의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중후반 정도인데 선진국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율 등이 오른다면 기업 투자유치를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소속 의원들의 법안 등을 통해 22%인 법인세율을 과거 감세이전 수준인 25%까지 되돌리고 소득세 역시 최고세율을 현행 38%에서 42%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하는 여당이 반대를 하는 만큼 김 대표가 극적인 빅딜카드를 내놓지 않는 이상 소득세·법인세 증세가 추진되기는 쉽지 않다.
대신 담배 가격(담배소비세·부가가치세·건강증진부담금 등) 인상으로 연간 최대 4조~5조원 정도의 세수를 거둬들이고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해 면세자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당정이 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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