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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 불감증
입력1999-04-12 00:00:00
수정
1999.04.12 00:00:00
우리 나라의 사정에 밝은 한 일본인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책 광고를 본 일이 있다. 그광고를 보는 순간 치부를 보인듯해 심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어떤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가 있다.한마디로 요약해 동방예의지국이 동방무례지국으로 전락해버린 우리에게 이웃 나라의 백성으로서 충고한 내용일 것이 확실하다. 저자는 맞아 죽을 각오로 썼다지만 우리는 그의 충고와 조언을 상찬해야 마땅하다.
사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외국인들의 눈에 뻔뻔한 민족으로 보일만치 예의가 없는 민족이 돼버렸다. 공중도덕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나라가 돼버렸다.
줄서는 사람보다 새치기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 뒷사람을 생각해서 열린 문을 잡고 있다가 번번이 도어맨 신세가 되는 나라, 남의 발을 밟고도 태연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전동차 안이든 엘리베이터 안이든 가리지 않고 먹고 마셔도 괜찮은 나라, 주문받으러 온 종업원이 엽차잔을 내던지듯 놓는 나라, 교통법규를 왜 만들었는지 알수 없는 나라…. 이러니 「아리가토 고자이마쓰」와 「스미마셍」의 나라 일본인의 눈에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왜 자리를 양보받는등 남에게 도움을 받고서도 고맙단 인사를 못하는가. 왜 남의 발을 밟는등 피해를 주고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하는가. 양해를 구하는「실례합니다」는 도대체 어디에 써먹겠다는 것인가.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우리만 못한 나라도 공중도덕이나 인사성으로는 우리의 선생이 된다는 말들을 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런저런 일로, 또는 순전한 관광목적으로 공항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외국나들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숱한 사람이 외국의 나쁜 점과 나쁜 것들을 용케도 배워오고 잘도 가져다 곳곳에 퍼뜨리면서 왜 외국에 나가서 보고 들은 좋은 점들은 금세 잊어버리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한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병증을 스피드시대답게 줄이면 「고미 불감증」이 된다. 이 「고미 불감증」의 조속한 치유야말로 국가 위신을 회복시키는 기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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