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에 휩싸인 한국IT 새로운 미래를 찾는다] SW발전, '빨리빨리' 만으로는 안돼 "SW는 하나의 문화"… 개방·다양성 존중 기업풍토 만들어야인문학등 기초학문 꺼리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선 '한국판 닌텐도' 탄생 요원법적인 규제 대폭 풀고 SW업체 자생력 키워주길 양철민기자 chopin@sed.co.kr 이유라기자 yrlee@sed.co.kr "국내 사업자들은 왜 닌텐도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나." 지난 2009년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가한 이명박 대통령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위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누리꾼들의 조롱을 받았다. 4대강 사업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던 이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어울리지 않았을뿐더러 대기업 위주의 사업 구조로 짜여진 국내 사업 현실에 너무 무지하다는 면 때문이었다. 이 덕분에 '명텐도'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나타내는 대표적 단어로 회자되고 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을까. 최근 분위기를 보면 그때 당시보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담론은 활발하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이야기만 무성한 채 어떠한 개선도 발견하기 힘들다. 소프트웨어(SW) 사업은 단순 투자 확대나 의지만으로는 성장시키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SW 산업을 하대하는 사회 풍토나 인문학과 같은 기초 학문을 꺼리는 풍조 또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SW는 하나의 문화=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리드대 철학과를 다니다 중퇴했다. 상경계열이나 공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점을 잡스의 강점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철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일반 공대 출신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SW에 대한 시각도 남달랐다는 지적이다. 이외에도 마이클 아이스너 디즈니 전 회장은 대학에서 문학과 연극을 전공했으며 칼리 피오나 전 휴렛팩커드 대표는 스탠퍼드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하는 등 정보기술(IT) 및 콘텐츠 업계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전공을 갖고 있다. 김민규 아주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는 "SW는 하나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며 "다양한 문화적 토대위에서 SW 사업도 번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료적인 기업문화… SW 사업의 걸림돌=LG전자 연구원 출신인 최세훈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LG전자는 혁신(Innovation)을 하지 않고 혁신을 주장하기만 하는 회사였다"며 "위험을 감수(risk-taking) 할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아니었다"고 LG전자의 기업문화를 비판했다. 그는 이와 함께 "LG전자는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부재했고 의사결정 또한 대표(CEO)나 연구소장의 말에 맞춘 결과물만 선보였다"고 과도한 규율에 대한 답답함도 지적했다. 현재 그는 카카오톡으로 알려진 카카오에서 일하고 있으며 수평적인 카카오 문화에 큰 만족을 느낀다고 밝혔다. 최근 LG전자의 휴대폰 사업부가 부진에 빠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료적인 기업 문화가 업계의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도 알 수 있다. 이종수 중앙대 교수가 쓴 논문에 따르면 조직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필요하며 업무의 창의성이나 개방적인 조직행동이 직무 만족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위주로 이뤄진 SW 사업 구조 때문에 프로젝트의 영속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SW 업계에서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의 책임자나 개발자가 교체되거나 개발 방향이 수정되는 일이 잦은 편이다. 외부에서 파견된 개발자들이 무리한 개발일정이나 과도한 업무 때문에 도중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박수정 이스트엠엔에스 대표는 "SW 사업은 SW 자체뿐 아니라 하드웨어와 디자인까지 고려돼야 좋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 낸다"며 "특히 책임자가 변경되면 서비스 철학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이 큰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SW… 결국에는 사람=결국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풍토 조성과 자유로운 기업 문화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홍구 한글과 컴퓨터 대표는 "소프트웨어 산업 종사자들도 음악이나 미술에 대한 조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한컴의 실적 상승의 원인으로 개발자들에 대한 우대와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꼽기도 했다. 한 보안업체 대표는 "결국 SW는 사람이 중요한 분야"라며 "SW 사업은 1980년대 개발 논리처럼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보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토양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류한석 기술문화 연구소 소장은 "관련 전문가가 부족한 정부로서는 적극적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해외기업 내지 대형 업체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며 "법적인 규제완화와 동시에 소프트웨어 사업이 대기업이나 정부 사업 수주 없이도 자생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격랑에 휩싸인 한국IT의 미래는?] 기획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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