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인기에 편승해 대한민국이 집단 추억여행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불씨를 당긴 복고 열풍에 올 겨울 '응답하라 1994'가 기름을 부으면서 전국민이 복고 신드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올 들어 영화계에서는 러브레터, 8월의 크리스마스, 화양연화 등 1990년대 추억의 영화들이 줄줄이 재개봉하는가 하면 가요계에서는 1990년대 가요가 리메이크되고 조용필 등 왕년의 가수들이 컴백했으며 유통가에서는 추억과 향수를 앞세운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 같은 복고 트렌드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함께 내년 시장을 주도할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해석의 재해석(Reboot everything)'을 꼽았다. 김 교수는 "과거의 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시간의 재해석,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용도의 재해석, 역설적 가치가 혼재하는 사고의 재해석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복고의 재현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을 더한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복고 열풍이 부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속되는 불황으로 '미래를 잃어버린 30~40대'가 미래형 소비보다 과거형 소비에 지갑을 열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각박해진 현실에서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데 좌절한 3040세대가 미래에 대한 욕구보다는 잠시라도 IMF 외환위기 이전 좋았던 과거를 되새김질하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위로를 얻으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386세대의 30대 시절에 비해 '응답하라 1994세대'라 할 수 있는 이른바 397세대(70년대생·30대·90년대 학번)는 일과 경제적인 면에서 훨씬 더 여유가 없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팍팍해진 현실로 인해 꿈이 꺾여 욕구불만이 높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도 항상 '복고' 는 있어 왔지만 레트로 신드롬이 확산된 데는 10~20대의 예상 밖 호응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동은 제일기획 마스터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상속자들'이 보여주었듯 현재 10~20대에 학교라는 곳은 계급과 왕따가 존재하고 살벌한 경쟁의 공간인 데 반해 '과거에는 현재와 다른 따뜻한 세상이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30대와 달리 추억이 아닌 판타지를 좇는 것"이라며 "각 세대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추억팔이' 마케팅으로 복고 열풍의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복고를 표방한 제품을 놓고 30~40대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를 떠올리는 매개체로 받아들이고 10~20대는 신선하다고 느끼면서 향수 마케팅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고 있는 것.
온라인몰에서는 베레모·더플코트 등 복고 의류·잡화 판매량이 최근 한 달 사이 크게 늘었고 식품업체도 복고와 현대를 버무린 추억의 메뉴와 복고 상품 판매전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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