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졸업생들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끈끈함이 있다. 과학자라는 하나의 별을 바라보며 정부출연연구원에서 학생이자 연구원으로서 학업을 수행하는 다소 낯선 길을 함께 헤쳐 왔다는 동료애가 그것이다. UST 졸업생들의 이런 연대감은 현재 그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학창시절 UST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당당히 한국천문연구원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정태현, 이우경 박사의 후배사랑 스토리를 들어봤다.
Q. 오늘 UST 후배들을 만나신다고요?
(정태현) 천문연은 다른 출연연 캠퍼스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합니다. 전공이 천문우주과학과 과학기술정책 2개 밖에 없죠. 하지만 그만큼 졸업생과 재학생들 사이의 결속력이 남다르기로 유명합니다. 재학생들이 저녁모임을 가질 때면 졸업생들이 자주 참석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도 천문우주과학 전공 재학생들의 모임이 잡혀, 이우경 박사와 함께 참석할 예정이에요.
(이우경) 모임에 가면 후배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선배로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도 해주려고 해요. 저희 때만해도 천문우주과학 전공에는 한 해에 고작 1~2명이 입학할 뿐이었지만 지금은 총 12명의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어요. 늘어난 학생 수만큼 고민거리도 많아지고 있답니다.
Q. 아무래도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많을 텐데 두 분은 어떠셨나요?
(정태현) 저는 좀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요. 대학원 시절 전파 간섭계 망원경을 연구했는데, 당시에만 해도 제 전공을 이어갈 곳이 흔치 않았죠. 그러던 차에 제 스승이자 이 분야의 선구자로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Korea VLBI Network) 프로젝트에 자문을 해주시던 사사오 교수님께서 UST 진학을 권유해 천문연 캠퍼스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6년의 박사과정 동안 주도적으로 KVN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천문연 입사도 비교적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이우경) 저는 일반 대학원에서 ‘인공위성 궤도역학’을 전공했어요. 석사과정 말미에 과제연구원 신분으로 천문연에서 연구할 기회를 잡았죠. 그때 함께 연구했던 부서장님의 권유로 UST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지난해 발사된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5호’의 부탑재체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만일 그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졌다면 정 선배님처럼 졸업 후 곧바로 천문연에 자리를 잡았을 텐데 중간에 사업이 일단락되면서 거취가 애매해졌어요. 그래서 시선을 밖으로 돌렸죠.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제 전공인 전리권 분야의 박사후과정 공부를 계속했어요. 그리고 끝내 천문연에 입사해 우주측지그룹에서 GPS, GNSS(위성측위시스템) 등에 기반한 응용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천문학 분야의 연구원 취업이 유독 하늘의 별따기라 두 분이 더 주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정태현) 그것이 오늘 저녁 만나게 될 후배나 국내 천문학과 학생들의 현실적 고민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때보다 학생 수가 크게 늘면서 취업 고민의 크기도 그만큼 더 커지는 듯합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천문연 캠퍼스에서 공부한 UST 학생들은 졸업 후 100% 천문연 취업에 성공했으니 좋은 전통을 계속 유지하자고 격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Q. 두 분은 연세대 천문대기학과 동문이시기도 한데, 어린 시절부터 천문학자가 꿈이셨나요?
(정태현) 그렇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부산의 산동네에서 자랐어요. 때문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별이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우경) 저는 별도 별이지만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에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았죠.
Q. 후배들에게 꼭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요?
(정태현) 연구와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이 말처럼 간단치 않다는 것은 UST 학생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저 역시 학생시절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시간을 경험했죠. 이런 굴곡의 파도들을 잘 견뎌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 경우에는 UST를 졸업할 때쯤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와 채찍질을 했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그 목표로 나아가는 길을 정확히 아는 것이 먼저겠죠.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됐을 때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자신의 목표나 비전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우경) 최소한 천문우주과학과 같은 순수과학 전공자라면 모든 것을 더 넓게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넓게 볼수록 자신의 지식과 실력이 얼마나 미천한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 경우엔 외국에서의 박사후과정이 이를 깨닫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보다 어리지만 더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더 많은 논문을 쓰는 외국인 학생들을 보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죠. 눈앞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바쁘더라도 순수과학자는 결국 논문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논문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외국의 학계를 경험하라는 당부도 드리고 싶어요. 그동안 쌓아온 지식을 가지고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면 자신도 놀랄 만큼 큰 도움이 될 거예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우경) 한번은 제가 왜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인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발견이나 발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씨앗이 된 것 같아요. 천문학이 인류의 실제적인 삶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크게 보자면 우주의 광활함 속에서 미천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류가 지식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연구도 마찬가지예요. 천문학이라는 전체 시스템에서는 아주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해도 제 연구가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리라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정태현) 올해부터 UST 교수로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그래서 유독 감회가 새롭습니다. 교수로서의 목표를 말씀드리면 제 스승인 사사오 교수님처럼 모든 학생들에게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는 겁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다른 나라의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강의 때마다 철저히 연구하고 준비하시는 등 학문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존경할 것이 많았던 분이었습니다. 늘 그분과 같은 연구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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