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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청문회] 김선홍 전기아그룹 회장 일문일답
입력1999-01-28 00:00:00
수정
1999.01.28 00:00:00
◇김선홍 리스트 논란(비자금)-대선이나 총선때마다 기업이 후보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다. 증인은 장부조작으로 6공때 460억원, 민주계에 600억원 등 총 1000억원대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소위 김선홍 리스트는 존재하는가.
▲김선홍 리스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거때마다 후보들에게 후원금을 지원하는 것이 당시 재계의 풍토였지만 억단위 이상의 돈을 지원한 적은 없다. 말그대로 인사치례에 가까운 떡값에 해당하는 돈을 줬을 뿐이다.
-지난 총선 때 기산의 부사장으로 있던 이신행 민자당 후보를 지원한 적이 있는가. 또 안기부 간부로부터 李 후보를 지원하라는 압력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
▲누구의 압력이나 지시라기보다는 당시 분위기가 재계의 경제실무자가 국회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쪽이었고 본인도 희망했던 것으로 안다. 선거자금으로는 회사가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아 16억정도를 지원했다
-당시 기아는 수백억원대의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비자금을 조성, 선거자금으로 대줬다는 게 제정신을 가지고 할 일인가.
▲잘못된 일이다. 당시 재계의 풍토나 정치관습이 그렇게 돼있었다.
-◇기아사태 처리
-97년 8월 9일과 12일 당시 임창열(林昌烈)통산부장관으로부터 조기 퇴진을 촉구받았는데 이에 불응하고 나중엔 만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林장관이 제3자 인수계획이 없다는 점을 밝혔음에도 못믿은 이유는 뭔가.
▲林장관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통산부차관으로부터 만난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전화가 왔었다고 부회장이 말해 안만났다고 기자들에게 답변한 것이다.
-그때 林장관의 요구대로 전격사퇴했으면 환란을 막고, IMF도 유리한 조건으로가지 않았겠는가.
▲당시 환란은 상상도 안했고 그런 감도 없었다. 그러나 기아는 당시 자동차 140개국에 4,000여개의 딜러를 통해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잘팔리면 캔디도 잘팔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은 정치나 정책에 직결된 중요한 산업이다. 기아사태와 관련 너무 단순히 처리한 것에 대해 울분을 느낀다. 대통령을 비롯 당시 고위직들은 기아사태와 관련 상의하거나 한번 만나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어느날 부도가 났다. 국가경제에 직결된 사업에 대해 좀더 정책적 배려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경영을 잘했어야 하지만 아쉽다.
◇삼성자동차 관련
-강경식 전부총리와 삼성의 밀접한 관계가 증인의 인식에 작용했나.
▲그것도 크게 작용한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시 김인호 전수석에게 기아사태와 관련 정부의 개입을 요청한 사실이 있나.
▲기억이 없다. 단지 金전수석은 채권은행단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원론적 이야기만 했다. 그러나 아산의 주행시험장을 삼성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청와대의 모 과장으로부터 들었다. 기아의 구조조정개혁을 보고하자 그렇게해서 사는 게 아니라 모재벌과 손잡고 영업을 같이 하도록 하는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박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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