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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5년 8개월만에 최저] 경상흑자 부담에 사실상 원高 용인… 연내 1,000원 위협할수도

강공 일변도 정책서 선회… 최저점 뒤에야 미세조정

내수·수출 균형맞추기 분석

오바마 방한도 부담 작용… 연말 1,000원선까지 갈수도


원·달러 환율이 크게 떨어진 9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외환출납부 직원이 각 지점으로 반출할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드디어 원·달러 환율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5년8개월간 철옹성처럼 버티던 1,050원선이 9일 맥없이 무너졌다. 1,050원을 뚫고도 급락하는 원·달러 환율을 바라보며 '설마' 하던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버벌(verbalㆍ구두개입) 나왔나요? 안 나왔죠?"라고 물으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2011년 7~8월, 2013년 1월, 올 1월 1,050원이 위협 받으면 타협의 여지도 없이 강공으로 맞서던 외환당국이었다. 학습효과가 생긴 시장도 1,050원만 다가가면 알아서 주춤거렸다. 이번에는 달랐다. 장중 최저가인 1,040원10전을 찍은 뒤에야 외환당국의 스무딩 오퍼레이션으로 추정되는 물량이 나왔다. 이어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환율 수준보다 변동성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며 "(수출에) 환율 영향이 예전처럼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원론적이지만 해석에 따라 1,050원을 양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050원선 열렸다" 달러 매도 봇물=지난해 하반기부터 원·달러 환율 하단을 받치던 미국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변수가 사라지고 우크라이나·중국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든 상태였다. A은행 외환딜러는 "글로벌 달러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데 원화의 경우 외환당국이 틀어막고 있었다"며 "외환당국 입장에서도 이번에 1,050원을 열어주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이 금융위기 이후부터 버티던 1,050원선을 용인한 데는 무엇보다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통계 개편으로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798억8,000만달러를 기록해 800억달러에 육박했다. 경상수지 흑자행진은 2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현 부총리가 지적했듯 환율하락으로 수출기업이 입는 피해도 과거보다 확실히 줄었다. 경제혁신3개년계획을 통해 내외수 균형발전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내수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더 이상 수출기업의 편만 들어주기도 쉽지 않다.

연초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웠던 원·엔 환율도 여유가 있는 편이다. 1월2일 100엔당 997원44전까지 급락했던 원·엔 환율은 1,020원선에서 거래됐다.



미국 또한 환율방어를 쉽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10월에 반기 환율보고서를 낸다. 4월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았고 오는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도 앞두고 있다. 손은정 우리선물 연구원은 "현재는 신흥국 통화 전반이 반등하고 있어 우리 당국이 개입할 명분이 없다"며 "외국인들도 주식·채권 순매수가 지속되는 상황이라 달러화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1,000원선까지 밀리나=원·달러 환율 1,050원선이 쉽게 뚫리면서 환율이 얼마나 더 하락할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마땅한 지지선이 없는 상태여서 1,000원 근처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1,030원, 1,020원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며 "환율이 하락하면서 대기매물이 소화된 후에는 미국 금리인상 등 반등재료가 나왔을 때 훨씬 가볍게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글로벌 달러약세 기조가 계속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점진적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올해 중 1,000원까지 하락한 다음 물가상승 등을 계기로 다시 반등의 빌미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론도 있다. 선성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환율하락 가능성이 높지만 1,040원선이 지지선"이라며 "2·4분기 말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미 국채 매입규모가 200억달러 밑으로 떨어져 미 국채금리 상승에 따른 달러강세장이 나타나면서 환율이 반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환당국이 틀어막던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에도 기대감이 깃드는 모습이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외환시장 활성화를 고민하면서 선물회사 관계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을 불러 의견을 물을 정도로 시장이 안 좋았다"며 "이번에 1,050원선을 터준 것에는 그런 의미도 담겼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금융회사 관계자는 "'환이 바닥이면 주식은 꼭지다'라는 말이 있듯 외국인 자금이 주식시장에 더 들어오기 위해서는 (환율) 아래를 터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2,000선에 안착하지 못하는 코스피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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