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과 분쟁서 승기 잡았지만 KCC의 물산 자사주 의결권행사
결론 안내려 불확실성 여전
해외 입김 큰 ISS 보고서도 주목… 국민연금은 찬성 가능성 높아
삼성물산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전초전이 삼성의 완승으로 마무리된 1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미래전략실의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했다. 법원이 삼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향후 엘리엇과의 분쟁에서 승기를 잡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진짜 고비는 지금부터라는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실제로 미전실 임직원들은 이날 오전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주재로 열린 분기별 회의에 참석한 뒤 법원 판결 결과를 지켜보고 이후 평소와 다름없이 주어진 업무에 매진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KCC에 매각한 삼성물산 자사주 5.76%의 의결권 행사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질 않아 주주총회가 열리는 오는 17일까지는 하루하루가 비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전략실과 삼성물산의 일부 임직원들은 벌써 한 달 이상 쉬는 날 없이 매일 출근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승기 잡은 삼성=삼성이 느끼는 긴장감과는 별도로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물산이 17일 주총장에서 열릴 '위임장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엘리엇이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은 합병 비율에 대해 법원이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분명히 밝힌 점이 고무적이다. 엘리엇은 1대0.35로 책정된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에 대해 자산 가치를 감안하면 삼성물산 주주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법에 따라 산정한 것으로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양사 합병 결정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또한 이번 합병이 삼성그룹의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엘리엇의 주장에 대해서도 "회사의 가치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주가 역시 시시각각 변동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밝혀 삼성의 짐을 덜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합병비율 및 시점과 관련해 명쾌하게 삼성의 손을 든 점이 삼성으로서는 무엇보다 긍정적인 대목"이라며 "엘리엇 입장에서도 앞으로 삼성을 공격할 만한 무기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엘리엇이 삼성을 상대로 낸 2건의 가처분 신청 중 'KCC의 의결권 신청 금지'에 대해서는 이날 법원이 결론을 내리지 않아 삼성의 불안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KCC는 삼성물산 자사주 899만주(5.76%)를 매입하며 '백기사'로 나섰는데 엘리엇은 이 지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달라고 법원에 요구한 바 있다.
◇ISS·국민연금 판단 최대 관건=삼성과 엘리엇 분쟁 1라운드가 삼성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이제 남은 고비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국민연금의 판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는 외국 투자 기관의 주총 의사 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ISS의 결정에 따라 삼성물산 외인 지분(33.61%)의 향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ISS는 이르면 2일 또는 3일 자신들의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주요 기관에 발송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물산의 우호지분은 계열사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KCC 등을 모두 더해 19.95%에 불과하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어제 제일모직 기업설명회(IR) 이후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긍정적으로 바뀐 듯하다"며 "설령 ISS가 반대 입장을 내더라도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단일 투자자로서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10.15%)의 결정도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편에 서 찬성 입장을 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됐으나 최근 SK와 SK C&C와의 합병 건에서 반대표를 내는 등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계의 고위 관계자는 "통합 삼성물산이 '거버넌스 위원회'를 설치하고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상장에 나서는 등 주주가치 개선에 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 국민연금도 찬성표를 던질 명분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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