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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화 단일화의 희망(송현칼럼)
입력1997-07-21 00:00:00
수정
1997.07.21 00:00:00
일찍이 토머스 칼라일은 경제학을「비관적인 학문」으로 비꼬았다. 괴팍한 스코틀랜드 철학자가 경제학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가.그후 인류의 생활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됐다. 일부 후진국은 평균 수명이 70세를 웃돌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EU(유럽연합) 단일통화인 유로화 출범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에 일침을 놓고 있다.
최근 유럽통화의 단일화 추진에는 적지 않은 걸림돌이 나타났다. 우선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와 콜정부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중앙은행 보유금 재평가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또 하나는 자유무역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주장하는 프랑스 사회당의 총선 압승. 그리고 중도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노동자층을 대변한 인기 좋은 토니 블레어가 영국총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분데스방크가 주도하는 유럽중앙은행이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높은 실업률을 감수하면서 엄격한 통화기준을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있어 은행가들의 독선은 저지될 것이다.
나는 유럽 및 세계 금융시장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빛을 강조하고 싶다. 정치인들의 리더십에 힘입어 유럽은 이제 통화통합의 원칙을 정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실행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달러와 엔에 대한 스페인의 제한된 페세타화 평가절하가 스페인의 수출경쟁력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스페인이 독자적으로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를 안전하게 추진하기는 어렵다. 통화통합의 바탕인 마스트리히트체제의 결속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있긴 하지만 마르크, 프랑, 길더 및 리라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소폭의 평가절하가 이루어진다면 유럽은 공동으로 고실업과 저성장에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MIT대 동료교수인 프랑코 모딜리아니는 매우 성공적인 지난 10년간의 미국식 경제성장모델을 지지하면서 엄격한 유럽방식을 포기하고 마스트리히트체제를 신축적으로 운영할 것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노벨상 수상자인 그는 비현실적인 개혁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잘못된 환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를 비판해왔고 안정과 성장의 길로 가도록 격려해왔다. 격동하는 국제정세는 과거엔 대접받지 못했던 그의 비전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일정이 순항할 가능성은 50%라고 본다. 다음 세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 단일유럽통화 및 단일 유럽중앙은행을 전면 거부한다고 해서 유럽의 미래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내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교역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브뤼셀이나 다른 지역에 이 일을 총괄할 관료기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이 유럽경제의 목을 둘러싼 엄격한 지혈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면 10여년에 걸친 유럽의 성장 정체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거나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발전 정도를 평가할 때 「인플레 없는 행복한 성장」이라는 이상적인 척도가 아니라 높은 고용을 유지할 만큼 성장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를 중시한다. 사전예측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합리적인 정책은 스스로 알아서 물가급등과 급격한 생산량변동을 해결해나갈 것이다.
약 1백년전 윌리엄 제닝스 브리언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금을 기준으로 해서 인류를 괴롭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의 경제학 지식은 얼핏 보면 보잘것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경제학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며 따라서 유럽같은 거대한 대륙의 운명이 거시경제학의 신화 속에서 탄생한 유행병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해서는 안된다.
유럽에 관한 이런 모든 것은 한국이 거시 경제정책을 세우는데 유익한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폴 A 새뮤얼슨 미 MIT대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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