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정부 부처 내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동수(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이 꿋꿋한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김 위원장은 겉으로 보이는 유순한 이미지와는 달리 일 욕심이 많고 속도감 있는 일 처리를 좋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금융당국을 비롯해 주요 정부부처들이 부패 스캔들, 추진업무 보류 등에 휘말리면서 힘이 빠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정위가 재벌과 금융회사 등을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를 이어가는 것도 이 같은 김 위원장의 강경한 스타일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올해 하반기 들어 재계에서 벌어지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에는 대부분 공정위가 개입돼 있다. 공정위는 이달 초 재계 3위 SK그룹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총 346억원의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했다. 연초부터 김 위원장이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장악하는 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데 따른 후속조치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대기업의 복잡한 출자구조와 관련된 지분도를 최초로 공개하는 등 재벌에 대한 사후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판매수수료 인하를 합의하며 매듭 지어지는 듯했던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거래 문제도 올해 하반기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공정위는 최근 국내 3대 대형마트인 이마트ㆍ홈플러스ㆍ롯데마트에 각각 20여명의 조사관을 투입해 대대적인 현장 조사를 벌였다.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한 불공정 행위 문제와 관련해 조만간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합의 이후 대형 유통업체들이 마치 공정위가 다시는 조사를 하지 않을 것처럼 착각이라도 했던 것 같다"며 "유통업계 불공정 행위 근절 문제는 김 위원장이 강조하는 공정위 최대 현안인 만큼 올해 말까지 확실히 매듭을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공정위는 최근 증권사와 은행들을 대상으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여부에 대한 조사까지 나섰다. 당장 금감원 등 금융감독기구 수장들과 영역침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카르텔 사건은 공정위 소관이라며 강경한 조사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재정부 차관 출신으로 정책통이라고 할 수 있는 김 위원장이 주요 이슈를 잘 선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 프랜차이즈, 컨슈머리포트, 전자상거래 등 공정위가 최근 역점을 쏟고 있는 분야가 모두 일반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더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간부 회의 등을 통해서도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일하라"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정권 말 정치권 입김 등에 휘둘리지 말고 공정위가 연초에 하기로 약속했던 일을 반드시 매듭 지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외부에서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정책을 서둘러 추진하는 와중에 컨슈머리포트 신뢰성 문제, 담합 조사 부실 문제 등이 잇따라 불거졌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말에 공정위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는 것도 사실상 군기잡기가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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