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 자리. 경기를 어떻게 살릴지를 놓고 정부와 새누리당 수뇌부가 머리를 맞댔지만 즉효를 낼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없었다. 몇 가지 서민대책 등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내수 발목을 잡고 있는 가계부채와 주택거래 침체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가 여권 내부에서조차 나올 정도.
이날 회의에 참석한 새누리당 정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오늘 당정협의회에서 하우스푸어(주택대출 이자 부담과 집값 하락으로 빈곤으로 내몰리는 주택 보유자) 문제를 어떻게 풀지를 주요 주제로 다뤘지만 뾰족히 주택거래를 활성화할 방법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자는 건설업계의 요청도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오늘 아예 논의되지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경기 진작의 해법을 놓고 여권 전체가 딜레마에 처했지만 정작 관련 정책 당국들은 뒤늦은 공방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 금융감독 당국인 금융위원회, 통화 당국인 한국은행이 경기 해법을 놓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3대 당국의 공방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한은은 경기가 더 나빠지면 정부가 예산을 더 확대해 시중에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한다. 반면 재정부와 금융위는 한은이 가계부채 문제 단속이나 잘해야 한다며 통화량을 잘 단속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3대 당국의 공방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 19일 신제윤 재정부 제1차관이 "통화량 증가가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통화 정책은 통화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발언하면서부터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 정책 세미나에 참석했던 신 차관은 이 같은 언급을 통해 실기 비판을 받아온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을 완곡히 꼬집었다.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 김준일 한은 부총재보는 21일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경기가 급속히 위축될 경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고 이것이 재정∙통화 당국 간 갈등 양상으로 비쳐지게 됐다.
그러던 것이 25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발언과 27일의 당정협의로 재정부 입지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25일 간부회의에서 "한은의 적극적 정책 협력이 없으면 (정부 가계부채 해소 방안은) 반쪽 대책이 될 수밖에 없다"며 통화 당국을 은근히 압박했고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수뇌부 역시 27일 당정협의에서 지금은 추경을 펼 시점이 아니라는 데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재정부도 경기를 살리기 위한 재정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김동연 재정부 2차관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재정건전성 확보는 정책 목표가 아닌 수단"이라고 못 박았다. 내년도 균형재정 달성은 중기재정계획의 큰 방향이기는 하지만 이것에 얽매어 재정 정책의 유연성을 잃어버리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김 차관은 이를 이른바 '사정권 방어론'으로 설명했다. 그는 "전쟁터에서 사선를 지키는 병사들은 적군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섣불리 발포할 수 없다"며 "주변에서는 지금 사격하자라고 부추길 수 있지만 현장 지휘관은 적군이 정확히 사선에 들어왔을 때 일제 발포를 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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