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에도 '대마불사'의 논리가 통용되는 듯하다. 참 이상한 등급조정이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30일 글로벌 금융회사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조정하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렸다. S&P는 이날 미국의 대형 은행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떨어뜨렸다. 대형 은행인 씨티그룹도 당연 하향 대상이었다. S&P는 이날 씨티그룹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그런데 정작 씨티그룹이 출자한 한국씨티은행은 장기 발행자 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오히려 상향 조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S&P가 한국씨티은행의 등급을 올린 이유. S&P는 "이번 신용등급 조정이 S&P의 은행 신용평가 기준 개정에 따른 것으로 위기 상황발생시 한국 정부의 특별 지원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자체의 내용이 확 달라져 등급을 올린 것이 아니라 설령 모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점이 등급을 올린 실질적인 이유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수많은 금융회사들의 문을 닫으면서도 은행만큼은 문을 닫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문제가 됐던 외환ㆍ제일은행은 외국계 자본에 팔려 영업정지되지 않았고 장기신용ㆍ보람과 충청ㆍ대동ㆍ동남 등은 다른 시중은행들과 인수합병(M&A) 또는 자산부채인수(P&A) 방식으로 각각 흡수 통합됐다.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마자 12개 종합금융사의 문을 닫고 수백개의 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키면서도 유독 은행에 대해서는 이른바 '대마불사'의 논리를 작용한 셈이다. S&P의 설명대로라면 우리 정부의 이 같은 구조조정 관행이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인데 "역으로 얘기하면 일종의 '대마불사 등급'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금융계 고위 임원)는 뜻이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종전 정부 지원 부분은 국책은행과 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 등 4대 은행에만 반영돼 있었다"며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뒤늦게 정부 지원이 반영돼 등급이 올라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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