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엔 환율은 오후3시 현재 100엔당 1,048원98전에 거래됐다. 이는 2008년 9월12일(1,033원16전) 이후 5년 2개월 만에 최저치다. 원ㆍ엔 환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800원대 수준이었지만 위기 이후 1,600원대로 솟았다가 5년여 만에 1,000원 코앞까지 내려왔다.
최근 원ㆍ엔 환율 하락은 금융위기 이후 조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이진우 NH농협선물 리서치센터장은 “금융위기 이후 원ㆍ엔 상승폭의 조정 차원을 넘어 원ㆍ엔 하락 추세에 박차를 가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며 “서울에서 개입을 통해 원ㆍ달러 환율 추가하락을 막는다고 해도 원ㆍ엔 환율은 엔ㆍ달러 환율이 위로 치솟는 순간 꺼지게 돼 있다”고 했다.
관심은 속도다. 내년 상반기 미국의 출구전략 시행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지난 3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둔화되는 등 경기회복이 뚜렷하지 않은 일본은 유동성 추가 공급에 나설 공산이 크다. 엔ㆍ달러 환율은 상승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년 4월부터 일본 소비세율 인상이 시행될 경우 경기회복을 위한 추가조치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 듯 21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추가 양적완화를 시사했다.
경상수지 흑자 신기록 행진에 바쁜 한국 경제에 이 같은 상황은 결코 반갑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원ㆍ엔 환율 하락이 미칠 부작용이 안 나타나더라도 장기적으로 수출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소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내년 중 100엔당 1,000원이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일본기업들이 엔화절하로 생긴 여력으로 신규 투자에 나서면 그 영향이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100엔을 넘긴 이상 엔ㆍ달러 환율 상승에 탄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반론도 없진 않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의 변덕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국내 수출업체는 환율상승에 따라 수출시장에서 되려 가격경쟁력이 향상됐다. 하지만 지금은 수출업체가 국내에 쌓아놓은 달러물량이 원ㆍ달러 환율 상단을 억누르는 모양새다. 송경희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향후 금융시장 불안에도 원화강세가 지속될 경우 환율의 경기조절 기능이 약해져 대외수출여건 악화 시 국내 수출에 더욱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대기업 구조조정 문제까지 장기화한다면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되려 한국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박 실장은 “자동차 등 일부 산업의 경우 환율 영향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경기위축을 막기 위해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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