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회사 망했다면서 그러면 아빠,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중국에서 쫓겨 나는 거야?”
중국 STX다롄에서 올해 6월까지 근무한 최 모씨는 최근 딸이 던진 질문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STX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이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되어 생활하는 참담한 현실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불안해 하는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곧 괜찮아 질거야”라고 했지만 이제 이 말마저도 거짓말이 될 확률이 커졌다.
STX다롄의 청산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최 씨처럼 STX다롄 현지에서 근무했던 한국 근로자들의 생활고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거나 중국 내 다른 조선소에 취업한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대개는 밀린 임금과 자식들의 교육 문제 등으로 차마 다롄을 떠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에는 최근 중국 STX다롄에서 일하다가 실업자가 된 한국인 근로자 3명의 눈물 겨운 편지가 동시에 전해졌다.
국내에서 30년 가까이 선박제작 관리·감독 업무를 맡다가 2008년 STX다롄에 취업했다는 오 모씨는 스스로를 “STX다롄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오 씨는 편지에서 “한국 조선의 자부심을 가지고 중국에서는 처음 한국 100% 지분으로 건설된 STX다롄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은 헌신짝 처럼 버림받은 직원이 됐다”며 “우리 돈으로 6,000만원에 이르는 체불 임금은 누구한테 받아야 하는 건지, 계속된 생활고에 이젠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고 전했다. 오 씨는 “생활비가 모두 바닥 급한 대로 다롄의 작은 업체에 취업했지만 이곳도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취업과 이사비용과 주택마련비 등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STX다롄이 정상화돼 밀린 임금을 받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이마저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STX다롄이 청산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젠 STX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중국 직원은 중국정부에서 책임지고 처리해 준다고 하는데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고 기다린 한국 근로자들은 졸지에 한국에서도 버림받고 중국에서도 버림받는 고아와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고 덧붙였다.
STX다롄 전직 한국인 근로자는 크게 세 부류. 첫째는 STX조선(창원·진해)에서 파견된 직원으로 대부분 국내 사업장으로 복귀했다. 둘째는 STX다롄조선해양기술에 입사했다가 STX다렌으로 법인이 통합된 이후 2010년부터 창싱다오로 근무지를 옮겨 근무한 직원들이다. 셋째는 STX다렌으로 바로 입사한 사람들이다. 최 씨와 오 씨처럼 중국 다롄 현지에서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생활난을 겪고 있는 근로자들은 두 번째, 세 번째인 경우다. 이들은 2,000만원에서 6,000만원까지 임금이 체불돼 있지만 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STX다롄이 법률상 중국 법인인 탓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STX조선 측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법인이 달라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최 씨는 “여기에 남아 있는 한국 직원들은 내 조국 대한민국으로부터 버림 받았다. 중국 정부 및 채권단은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몰라라 하고 있다”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어 “일부 직원들은 생계를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다른 지방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면서 “한 번 움직이면 2,000위안 정도가 들기 때문에 가족을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 먼 이국 땅에서도 가족들이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 가슴아프다”고 전했다.
최 씨는 마지막으로 “중국 직원들은 겉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속으로 너희 한국 사람들 때문에 자신들 마저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됐다는 비아냥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STX에 근무하는 남편, 아빠 때문에 죄인아닌 죄인이 돼 생활하는 이 참담한 현실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