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인사에서 승진은 바라지도 않고 자리만 지켜도 감지덕지죠."
증권 업계가 금융시장 침체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연말을 앞두고 분위기가 무겁다. 올해부터 기존 3월이었던 회계결산이 12월로 바뀌면서 증권사들의 인사 시즌도 이른 봄에서 올해 말로 당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 지속된 수익성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한층 추워진 날씨에 더욱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이다.
국내 A 증권사 관계자는 "보통 4월과 10월 두 차례 정기인사가 있었지만 12월 결산으로 바뀌면서 올해는 10월 인사 없이 연말에 한꺼번에 인사를 할 예정"이라며 "잘 될 때는 인사대상의 50% 이상이 승진되기도 했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그 절반도 어렵지 않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증권사의 직원은 "실적이 좋지 않아 연말 인사 시즌을 맞는 분위기가 우울하다"며 "승진 인사폭은 크게 줄 것이라는 걱정이 많고 특히 영업부서 직원들은 완전히 실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 걱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 증권사의 몸집 줄이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체 62개 증권사의 올 상반기 국내 지점 수는 1,549개로 지난해 1,744개에서 11% 넘게 줄었다. 전체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4만3,586명에서 4만1,687명으로 약 2,000명 가까이 줄어드는 등 실질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현실화되고 있다.
'증권가의 꽃'이라 불리는 애널리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애널리스트를 '시든 꽃'이라고 부르는 자조 섞인 말마저 생길 정도다. 국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말 1,455명이었지만 10월 말 현재 1,346명으로 7.5% 줄었다. 국내 산업 전반의 부진으로 자발적으로 떠난 경우도 있지만 애널리스트가 기업 분석과 함께 사실상 증권사의 법인 영업을 지원하는 점을 감안할 때 증권 업황의 부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애널리스트는 주로 연간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대부분 계약기간이 3월까지다. 하지만 연말에 대규모 인사가 단행될 경우 이들도 인사 폭풍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금융지주나 대기업 계열사에 속한 증권사의 경우 더욱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주요 금융지주 계열인 B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일단 애널리스트는 3월 계약 만기가 많기 때문에 연말 인사가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것은 법적 분쟁 소지가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주사의 결정에 따라 관련 공문이 발송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적 착시 효과도 걱정이다. 12월 결산으로 바뀌면서 3개 분기만 사업보고서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부진한 실적에 전체 '파이'마저 쪼개야 하기 때문에 실적 악화 우려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유승창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위탁매매수수료가 전체 수수료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웃도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며 "최근 지수 상승에도 증권사들이 당분간 현재의 저수익 구조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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