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사진) 한국전력 사장이 취임한 후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은 1층에 있던 사장 전용 엘리베이터다. 사장과 귀빈들만 이용하던 이 엘리베이터에서 요즘은 직원들과 사장이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가끔 볼 수 있다. 10여명에 가깝던 사장 비서실 조직은 절반으로 축소됐다.
직원들과 사장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지난달 조 사장이 전직원을 대상으로 보낸 편지에는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직원들과 밀양 송전탑 문제로 고민하는 심경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사장의 훈시라기보다는 친구의 위로 같은 느낌이다. 편지 말미에는 직접 골랐다는 이상부 시인의 '봄'이라는 시도 첨부했다.
연설문을 비롯해 모든 글을 사장이 직접 쓴다는 점도 조 사장 취임 이후 달라진 점이다.
취임 140일을 맞은 조 사장이 스스로 권위를 허물며 한전의 철밥통 권위주의 문화 타파에 나서고 있다. 직원 수만 2만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공기업의 체질 개선이 시작된 것이다.
조 사장은 취임 이후 한전의 조직 문화를 '중무장한 기갑사단'같다고 표현했다.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고 윗사람만 쳐다보던 획일적인 문화를 비판한 것이다. 조 사장은 "가장 실패하는 조직은 축구공을 따라 11명이 다 쫓아가는 문화"라며 "권위주의를 타파해야 변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사장의 '한전 체질 개선'은 사장에 대한 의전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비서실 조직은 줄이고 출장을 갈 때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수행비서 한 명만 대동했다. 한전 관계자는 "사장이 찾아오면 도열하는 식의 문화가 남아 있던 게 사실"이라며 "조 사장 취임 이후 사장 의전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7일 '권위주의 타파 14계명'을 발표하며 전사적으로 조직 문화 혁신에 뛰어들었다. 이는 한전 내부에 잔재돼 있는 권위주의적 관행들을 언어예절ㆍ보고ㆍ회의문화 등 7개 분야 14개 개선과제로 종합한 것이다. 전직원의 의견을 물어 상향식으로 과제를 도출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14계명은 무엇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모범을 강조하고 있다. 상급자는 회의에서 말을 줄이고 보고를 받을 때 보고자가 앉도록 권하라는 지침을 제시했다. 회의나 손님을 접대할 때 차는 스스로 준비하고 상사가 먼저 휴가를 사용하는 모범을 보일 것도 주문했다. 이 밖에도 '지위에 상관없이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기' '지나친 반말ㆍ하대하지 않기' '음주 위주 회식 지양' '행사 참석 시 수행 인원 최소화' 등도 실천 과제로 제시했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 직원들이 스스럼 없이 상급자와 대화할 수 있어야 다른 이해관계자들하고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며 "조 사장이 시작한 한전의 조직 문화 혁신이 다른 공공기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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