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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웅 휴먼칼럼] 무슨 직업을 원하십니까?
입력1999-02-23 00:00:00
수정
1999.02.23 00:00:00
「당신 직업이 뭐냐?」고 물을 때 프랑스 사람들은 좀 색다른 표현을 쓴다. 『QU'EST-CE QUE VOUS FAITES DANS LA VIE?』직역하면 「당신 삶속에서 무슨일을 하고 있습니까?」다. 직업을 묻는데 거창하게 삶이 등장하고 인생이 거론된다. 한마디로 심각한 표현법이다. 말을 뒤집으면, 직업이란 인생사에서 그토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말이 된다. 또 곰곰히 생각해 봐도 직업 선택만큼 심각한 일이 세상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처럼 어느 대학, 무슨과 입학으로 인생이 결판나는 단판 승부식 의식 구조아래서는 직업 그 자체가 바로 인생인 만큼, 직업과 삶을 결부시키는 프랑스인들의 표현이 새삼 지혜로워 보인다.우선 나부터가 직업 선택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않았던가. 어떤 직업을 택할까를 놓고 대학 4년과 군대생활 3년을 송두리채 헌납하지 않았던가. 외교관이냐 신문기자냐 둘 중의 하나를 놓고 결단과 번복을 밥먹듯 되풀이 했다. 외교관이 되려고 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하필이면 입학하던 그 해 5.16이 터져 외무고시가 폐지됐다. 군출신 외교관이 늘어나면서 외교관의 수급(需給)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결국 신문기자를 직업으로 택했지만 고민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만 30년을 기자로 뛰면서 이 직업이 과연 내 인생을 걸고 해 볼 가치가 있는 직업인지 아닌지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에게 물어 왔다. 그런 습관은 타인의 직업을 살필 때도 그대로 되풀이 돼 실수아닌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연극 연출을 하시는 L씨를 술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첫인사로 『연극 연출이라는 그 일, 일생을 걸고 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냐?』고 묻자 그가 무척 당혹해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술자리가 파할 무렵이 돼서야 느닷없이 『가치가 있다』고 답변, 그 엉뚱한 심각성으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됐지만 나는 지금도 똑똑이 기억한다. 내가 수인사로 던진 그 질문 이후 그가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단 한번도 웃지 않았다는 걸, 그리고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는 그의 표정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나무래 확신쪽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을. L씨에게도 직업은 바로 삶 그 자체였다.
이 직업선택과 관련,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례가 하나 있다. 그 어려운 직업선택을 너무나도 말끔히 처리한 한 한국계 미국 청년의 얘기다. 이번 글의 주제를 직업선택으로 고른 이유도 이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이 청년을 직접 만난 건 아니고, 그의 부모로부터 전해들은 5년전의 얘기에 불과하나 청년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 보다 더욱 생생하니 이상하다. 직업선택에 관한 나의 가슴앓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아무튼 직업 선택을 놓고 그 청년만큼 말끔하게 솜씨를 보인 인물이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한국계 미국인들처럼 부모 역시 그에게 의사가 되기를 바랬다. 미국에서 의사가 되는 건 바로 고소득과 존경의 보장을 뜻한다. 그 문제를 놓고 청년은 정확히 1주일동안 고민하더니 의과대학 진학을 포기, 학부에서 전공한 심리학을 골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의사되기를 포기한 경위를 이 청년은 다음과 같이 부모에게 설명했다. 『고름을 째고 피를 받는 의사 직업이 과연 내게 적성인가, 아니면 고소득과 존경확보라는 부차적인 목표때문인가』
언뜻 어디서나, 또 누구한테서나 들을 법한 얘기로 치부될 수 있는 사안이나 왠지 나에게는 예사소리로 들리지가 않았다. 대학 교정의 벤취에 들어 누워, 때로는 청진동 빈대떡 집의 백열등 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또 때로는 지글지글 끓던 부대 연병장을 포복하며 7~8년 남짓 한시도 내 뇌리를 떠나지 않던 직업선택 문제의 핵심, 고민의 표적을 정확히 꽤 뚫었던 것이다. 통념 대 가치, 본질 대 비본질을 정확히 가린 후 선택에 임한 것이다. 통념이나 비본질적 요소, 다시말해 의업(醫業)그 자체보다 그 의업이 던져줄 「고소득」부스러기에 연연했던 자신의 착오를 예리하게 지적해 낸 것이다. 직업은 막스 웨버에 따르면 「소명」을 뜻한다. 소명을 재는 기준은 무엇인가. 단 한푼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 치더라도 그 일이면 왠지 손을 뗄 수 없는 일, 그게 바로 소명이자 천직이다. 요즘같은 구직난에 소명이나 천직을 따질 때냐고 반박 하겠지만, 오히려 바쁠때 일수록 돌아갈 필요가 있다. 졸업 시즌이다. 캠퍼스를 떠나는 대학 졸업생들이 한번쯤 자문해 볼 시간이 됐다. QUEST-CE QUE VOUS FAITES DANS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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