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관제탑)가 사라지면서 정부의 경제정책들이 겉돌고 있다. 경기진단부터 처방까지 경제 사령탑들이 제각각 딴소리를 내고 있고 그렇다 보니 경기부양과 통화량 관리에 대해서도 상이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경제 위기의 구체적 양상과 처방을 놓고 부처와 기관마다 중구난방식 해법을 토해내고 있는 형국이다. 위기가 닥쳤는데 이를 돌파할 장수들이 공조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여야의 정치적 공세까지 더해지면서 경제 수장들이 오히려 혼란을 키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현재의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조정(3.7%→3.3%)하면서도 경기의 흐름이 상반기에는 낮고 하반기에는 높아지는 '상저하고'를 유지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경기 회복세가 꺾이는 게 아니라 그 시기가 유럽 재정위기 해소 지연으로 늦춰지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재정부는 심지어 "경기가 바닥을 다져가는 모습"이라며 경기바닥론을 꺼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진단은 재정부와 사뭇 다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4일 금융위 간부회의 자리에서 "이번 유럽발 재정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이라며 "위기대응 태세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한국은행은 재정부 입장을 거들고 나섰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달 8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수출 자체는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경상수지 흑자목표는 오히려 초과할 것"이라고 다소 낙관적인 시각을 보였다. 경기진단을 둘러싸고 경제 수장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분석이 상이하면 해법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정책의 실패로 귀결되게 된다.
김준일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달 21일 한 토론회에 참석해 "경기가 급속히 위축될 경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며 재정확대론을 공론화했다. 그러나 재정부는 아직은 추경을 펼 시기가 아니라며 맞불을 놓았다. 대신 올해 편성된 정부 예산의 여유분을 활용해 정부 기금의 사업비 지출을 늘리는 등 우회적 대책을 펴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추경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민주통합당이 추경의 법적 요건과 전혀 상관없는 지방자치단체의 무상보육 재정난을 빌미로 추경 편성을 주장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통화량 관리를 놓고는 재정부ㆍ금융위가 한은과 대립하고 있다. 재정부와 금융위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은이 통화량 관리방안을 강구하거나 정책공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통화량을 조절해 가계부채를 해결하는 것은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각을 세우고 있다.
경제정책을 둘러싼 백가쟁명식 혼선은 기본적으로 재정부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 제약을 받는 정부구조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나 2004년 카드대란 당시에는 재정부(혹은 재정경제원) 장관이 부총리 지위를 갖고 있어 경제부처를 일사분란하게 통솔할 수 있었다. 당시 경제부총리들은 오랜 경제관료 경력을 통해 관료계 네트워크와 위기시 정책기획력을 다져왔기 때문에 정부 내 소통에서도 유리했다. 하지만 현재의 재정부 장관은 부총리급이 아니다. 박 장관은 정통 관료 출신이라기보다는 학계 인사로 분류돼 관계 인맥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재정부에서 주요 경제현안 관련 장관회의가 열릴 때마다 직접 청사를 방문해 박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기는 하다. 아울러 정부는 정치적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제윤 재정부 제1차관을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시켜 한은과의 정책조율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집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레임덕 위기에 빠지고 있어 박 장관을 지원해줄 후광효과도 빛이 바랜다는 게 관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정부와 한은 간 정책조율 역시 여전히 신통하지 않다는 게 금융시장의 평가다. 당정 간 관계를 봐도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강력한 여권공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새누리당의 당권을 잡은 친박계(친박근혜계)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 정부와 적극적으로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는 탓이다.
따라서 경제 사령탑들은 정치적 논란 위험이 최소화된 정책을 위주로 정책조합(폴리시 믹스)을 시도해 정치권의 정치공세 빌미를 차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경제부처 간 이견 가능성이 있는 사안은 총리실이나 청와대가 미리 나서 의견조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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