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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24세인 김지연씨는 현재 카드업체와 저축은행에서 빌린 돈이 1,422만원이다. 전문대 졸업 후 영업직으로 일했지만 박봉으로 부족했던 생계비를 신용카드나 대출로 충당하다가 결국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했다. 일정한 소득은 있으나 채무 대비 소득(한달 140만원)이 적어 빚 상환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재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원금 일부와 이자 전액을 감면받는 개인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다.
# 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서영은(27)씨는 이제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았다. 부모님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서씨는 지난 7학기 동안 정부학자금 대출을 이용했다. 부족한 생계비는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친구들은 현재 취업을 하거나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빚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서씨에게 남은 것은 제때 이자를 내지 못해 떨어진 신용등급과 2,000만원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뿐이다.
청년들이 빚과 씨름하며 신용불량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취업한 청년은 소득이 적어 생계비 명목으로 고금리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 손을 내밀었다가 금융연체자로 전락하고 있다. 또 대학생은 쌓여만 가는 학자금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저신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청년층의 신용불량 증가가 개인의 경제적 불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려 더 큰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단계별로 마련된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적극 활용돼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신용교육 강화 등 교육 시스템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험수위, 청년 신용불량자=21일 신복위에 따르면 지난해 신복위에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한 7만6,839명 가운데 29세 이하 청년층은 6,535명으로 전체의 8.5%를 차지했다. 개인 워크아웃 신청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금융채무불이행 등 신용유의자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개인 워크아웃제도는 여러 금융기관에 연체된 다중채무자의 채무(5억원 이하)에 대해 조정을 거쳐 최장 8년 동안 분할상환할 수 있게 해주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이다. 청년층의 경우 지난 2011년 1ㆍ4분기 1,482명에서 2ㆍ4분기 1,582명, 3ㆍ4분기 1,606명, 4ㆍ4분기 1,865명 등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학자금대출 연체자가 급증하면서 대학생들의 신용이 나빠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학자금대출 연체자는 2007년 3만1,506명에서 2008년 4만682명, 2009년 5만3,008명, 2010년 6만2,829명으로 매년 약 1만명씩 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6월 말 기준으로 6만4,774명의 연체자가 발생해 이미 전년도 기록을 넘어섰다. 연체자가 늘면서 학자금대출로 인한 신용유의자 수는 2007년 3,785명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 6월에는 2만9,076명으로 늘어 '학자금 신용불량자 3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요즘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이 실업자 혹은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의미의 '청년실신'이라는 말이 통계에서도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청년층 신용불량, 국가 성장잠재력 훼손=청년층의 신용불량은 물론 개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다. 금융생활에 상당한 경제적 불이익을 받고 사회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통상적으로 새 대출을 받을 수 없고 기존 대출금에 대해서도 조기상환 요구를 받는다. 또 제도권 금융기관에서도 사실상 퇴출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금리의 비등록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김영복 신복위 조사역은 "20대 청년층은 생애주기로 볼 때 취업ㆍ결혼ㆍ주택마련 등으로 다양한 자금이 필요한 시기인데 신용관리를 잘하지 못해 한번 뒤처지기 시작하면 이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신용불량이 장기적으로 금융 및 경제활동을 둔화시켜 국가의 경제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한창 일해야 하는 계층이 사실상 빚의 족쇄를 차고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데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청년층이 신용불량 상태로 장기간 묶여 있으면 국가 차원에서도 손해"라며 "이들을 구제해서 얻는 기대 편익이 빚을 탕감해줄 때 발생하기 마련인 도덕적 해이의 비용보다 크다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이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용회복 프로그램 활용해야=청년층의 신용불량 확산을 막으려면 우선 짧게는 사적ㆍ공적인 영역에서 운영하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는 신용불량의 정도에 따라 캠코의 '채무재조정', 신복위의 '개인 워크아웃제', 법원의 '개인회생제도' 등 다양한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청년들은 많지 않다.
졸업 후 취업을 하지 못해 학자금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위해서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복무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해볼 만하다. 각자의 전공에 맞는 기관 혹은 기업에서 일하는 대신 급여의 일부를 대출금 상환에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용불량 위기에 놓인 청년들은 신용회복과 함께 일자리 찾기에도 성공해 경제적으로 보다 확실한 재기가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신용위험 노출이 점차 커지는 사회적 환경을 고려해 예방 차원에서 청년층의 금융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휴대폰 사용의 보편화와 모바일 결제, 인터넷 거래 증가, 신용카드 융합 등은 젊은층이 신용위험에 노출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건전한 금융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금융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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