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현재는 이라크 북부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반군세력(ISIL)이 유전지대가 몰려 있는 이라크 동남부 지역까지 내려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예상되나 자칫 전선이 넓어질 경우 막대한 직간접 피해가 불가피하다.
정부는 우선 현지 파견 직원의 안전 문제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라크에 진출한 한국인 근로자는 약 100개 기업 1,4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반군세력의 거점인 북부지역에 머물던 석유공사 직원 100여명은 대사관의 권유에 따라 안전지대로 피신을 완료했으며 이 밖에 위험 지역에 머물던 근로자들도 바그다드 이남 지역이나 두바이 등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현재 위험 지역에 남아 있는 근로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라크에 진출한 에너지기업의 개발사업 차질도 불가피하다. 현재 에너지 프로젝트를 보면 가스공사가 아카스·만수리아·주바이르·바드라 등 네 곳, 석유공사가 하울러·바지안·상가우사우스 등 세 곳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중 사업속도가 가장 빠른 가스공사의 아카스 가스전은 서북부 지역에 위치해 반군세력에 완전히 장악당했다. 가스공은 한국인 근로자를 전원 철수시키고 현지 업체에 캠프 조성 작업을 맡겼으나 기자재 조달 등의 문제로 사업 중단이 사실상 불가피하다. 아카스 가스전을 제외한 에너지 개발 현장은 이제 사업성을 파악하는 단계여서 우리 기업이 직접적으로 입는 피해는 크지 않다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건설·플랜트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다만 건설 현장은 대부분 이라크 동남부 지역에 몰려 있어 아직 심각한 위험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이라크에서 상주 인원이 가장 많은 건설업체는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한화건설로 본사 인력 500여명과 협력업체 500여명, 외국인 근로자 1만여명이 현지에 머물고 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이 진행되는 곳은 바그다드 동남쪽 12㎞ 부근으로 내전이 벌어진 지역과 떨어져 있어 현지 직원들이 위험을 체감하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원유 수급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우리 정유업체 중에서는 GS칼텍스가 이라크에서 일 평균 2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해오고 있다. 이 회사의 전체 원유 수입량의 20%를 차지하는 수치다. 만약 남부 유전에서 생산이 중단되면 수요를 대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현물시장에서 석유를 사와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유럽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수입선을 넓히고 있다"며 "특히 사우디와는 구체적인 수준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라크 석유생산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컨틴전시플랜에 따라 움직인다는 입장이다. 현재 관심 단계인 원유 수급 모니터링 레벨을 주의·경계·심각 순으로 상향하고 국제에너지기구(IEA)와 협조해 전략비축유 방출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라크 사태 진행에 따라 단기적으로 원유가 배럴당 5달러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환율에 이어 원유 수급까지 불안정해질 경우 경제에 미칠 영향이 커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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