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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일관성 있는 기준이 아닌 자의적인 판단이나 정부의 입김에 의해 의결권을 행사할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앞으로 3년 정도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시장의 우려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권종호(54)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5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권 교수는 지난 18일까지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권 교수는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부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식물주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를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향후 몇년 간은 만도의 경우처럼 국민연금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시장의 변화를 평가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행사가 기업을 위축시켜서는 안되는데 의결권 행사의 일관성이 없을 때 기업이 위축된다"며 "현재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지침대로 원칙에 따라서 일관성 있는 의결권 행사가 지속되면 이러한 우려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대안으로 주장하는 주주권 행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권 교수는 "아직까지 주주권을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며 "상법상으로는 현재도 국민연금의 주주권(이사 해임 및 선임 청구권ㆍ주주 대표소송 제기권, 장부 열람권 등) 행사가 가능하지만 내부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금지한 것은 기업들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과 달리 국민연금의 국내 기업 지분율이 워낙 높아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들고 있는 기업은 만도·SBS 등을 포함해 40여개에 달한다. 권 교수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게 되면 국민연금이 기업의 모든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단계가 돼버린다"며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의도를 떠나 현재 시장에서 우려하고 있는 대로 국민연금의 배후에 정부가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들에 올바른 의결권 행사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 교수는 "기관투자가 중에서 펀드나 보험회사는 이해관계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중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연기금이나 공제회가 우리나라의 주주 문화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자금을 위탁 운용하는 운용사 선정 시 과거 의결권 행사 이력 등을 평가 항목에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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