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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에서 파스퇴르유업회장까지/우유전쟁:1(최명재의 인생 도전)
입력1996-10-01 00:00:00
수정
1996.10.01 00:00:00
이청 기자
◎80년대 유가공 업계와 치열한 「진짜우유」 논쟁/「저온살균」 채택업체 늘어 시비 판정 내려진 셈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초에 이르는 기간 우리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이룩하였다. 변화와 발전에는 갈등과 고통과 투쟁이 따른다. 이 기간 우리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일어난 커다란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우유전쟁」이었다.
소에서 짜낸 젖을 적당히 가공하면 그만인 우유를 가지고 무슨 대단한 논쟁이나 시비가 일어난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의 식품산업이 종래의 후진국형 산업에서 선진국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은 여러모로 우리사회 전체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우유전쟁의 발단은 최명재 회장의 파스퇴르우유의 탄생이었다. 저온살균우유라는 낯선 수식어를 달고 나온 이 우유는 탄생 그 자체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수년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될 이 전쟁의 주역은 최명재 회장이었다. 상대는 기존의 유가공업체들.
기존 생산업체들과 단체 그리고 정부기관, 일부 언론까지 가세한 절대다수의 상대를 놓고 벌인 이 「전쟁」에서 최 회장은 사면초가의 외로운 신세였다. 그러나 그는 「저온살균 우유가 더 좋은 우유」라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직접 호소하는 「최명재식 광고」를 창안, 무기로 사용하면서 마침내는 길고 지루한 「전쟁」을 승리로 매듭지었다. 우유전쟁이 법률적인 관점에서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하나 이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94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우유생산업체들이 저온살균우유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므로 시비의 판정은 저절로 내려진 셈이었다.
우유전쟁은 81년 일본에서 먼저 일어났다. 몇몇 학자들과 낙농가들이 유럽의 우유 생산방법을 본받아 개발, 연구해오던 「진짜 우유」를 소비자단체가 지원하여 「진짜우유를 마시자」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의 우유전쟁도 한쪽에서는 고온처리방법으로 우유를 생산해 오던 기존의 유가공업체들과 그 단체, 다른 한쪽에서는 저온처리방법을 주장하고 나온 학자 및 소비자단체 그리고 소수의 생산업체 사이에 「진짜」「가짜」의 논쟁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시비가 뜨겁게 달아오르지 못하고 뚜렷한 결론도 없이 양측의 주장이 공존하는 양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파스퇴르우유가 생산되기 9개월전인 87년 1월 일본에서는 건강평론가 한 사람이 「맛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만화로 제작되어 1천만부가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내용은 「기존의 우유는 맛과 영양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간행으로 「진짜우유 시비」는 재연되었다. 일본 유업협의회와 전국우유보급협회가 저자에게 항의서한을 보내고 저자와 소비자단체가 반격을 가하면서 공개토론 직전까지 이르렀으나 유업협의회측이 토론을 회피함으로써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일본에서 「우유전쟁」이 이처럼 미지근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안 전장은 예상치 못한 사이 한국으로 옮겨져 뜨겁게 달아올랐다.<이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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