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개발(R&D)의 비효율성을 논할 때 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전체 R&D 투자금액 19조원 가운데 출연연으로 배정되는 금액은 4조5,000억원밖에 안 돼요. 나머지 14조5,000억원은 수많은 기관을 거쳐 기업·지방자치단체로 흘러가는데 이 부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사실 관건이죠. 출연연은 해당 기관장이 책임지면 되지만 14조5,000억원에 대해서는 현재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요."
17일 서울 상암 RSS(Russia Science Seoul)센터에서 만난 박경엽(58·사진) 한국전기연구원장은 최근 출연연만을 향한 정부 R&D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이렇게 꼬집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출연연을 제외하면 나머지 R&D 예산 집행은 수많은 기관에 흩어져 있는데다 광범위한 분야, 시간부족 등을 이유로 전문가 평가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정부 R&D 예산은 미래부를 비롯해 33개 부처와 위원회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예산조정도 미래부 70%, 기재부 30% 수준으로 이원화돼 있다. 지난달 정부 R&D 혁신방안이 발표됐지만 여전히 화살은 출연연에만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박 원장은 "출연연 외 R&D 투자과정에서 관련 기관장·책임자가 수개월을 두고 바뀌니 연구 일관성이 지켜지기 어렵다"며 "미국처럼 컨트롤타워 책임자가 10~20년을 한자리에 앉아 관장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박 원장은 이와 함께 최근 R&D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중국의 급부상을 우려했다. 연구원 수나 투자금액 면에서 차이가 큰 만큼 한국이 똑같은 기준에서 경쟁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박 원장은 이를 위해 정책적으로 정부 R&D가 나아갈 방향을 더 뚜렷이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원장은 "중국은 연구원 수나 투자금액도 많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1970~1980년대처럼 밤낮없는 연구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대로 중국과 경쟁체제를 유지해서는 국가경쟁력에 큰 위기가 올 것"이라며 "이제 중국과 R&D 분야를 분담할지, 전혀 새로운 분야로 나아갈지 국가적으로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걱정했다.
박 원장은 무엇보다 어떠한 연구도 세계 최고가 되기 전까지 특정 단계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확고한 소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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