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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대전/격동의 자본시장] "이젠 증시가 금융중심"
입력1999-06-20 00:00:00
수정
1999.06.20 00:00:00
우원하 기자
한국의 자본시장이 금융위기 극복과정을 거치면서 획기적인 발전 전기를 맞고 있다.격동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한국자본시장의 실태와 발전방향을 「금융대전 시리즈 2부-격동의 자본시장」 으로 8회에 걸쳐 연재한다.
(1)새로운 패러다임-증시가 금융시장의 중심으로
『정말 엄청난 변화입니다. 직접금융비중의 확대와 투신권의 성장은 금융의 증권화라는 세계적 추세와 부합되는 현상이며 자본시장, 즉 증시가 금융시장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합니다.』(강병호(姜柄晧) 금융감독원 부원장)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금리 코스트를 맞추어주지 못하고 있어 우량 대기업들의 은행 이탈 현상이 가속화됨을 피부로 느낍니다. 은행들도 이제 투자은행화 해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해야 할 때입니다.』(최동수(崔東洙) 조흥은행 부행장)
『증권회사들의 고객예탁금을 맡아놓은 기관으로서 돈을 굴릴데가 마땅히 없는게 요즘 가장 큰 고민입니다. 은행들이 예금을 마다합니다. 그래서 유동성이 좋은 채권을 사려고 합니다.』(김거인(金居仁) 한국증권금융 사장)
금융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히「변화」로 표현치 않는다.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연속성을 갖는 현상을 변화라고 할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금융시장에 나타나는 현상은 단층과도 같은「혁명」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라고 해야 적절하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금융시장의 모습은 금융권별 여수신 통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숫자를 먼저 보자.
금융위기가 표면화되기 전인 지난 97년 8월30일 은행권 예금잔액(신탁제외, 양도성예금증서 발행액 포함)은 199조8,000억원. 같은날 투신권의 수익증권 수탁고는 96조1,000억원, 증권사 고객예탁금은 2조7,000억원이었다. 투신권 수탁고와 고객예탁금을 합쳐도 은행수신의 49.4%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6월16일 현재 은행수신은 267조1,000억원. 투신권 수탁고는 290조6,000억원이며 고객예탁금은 8조4,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투신권의 덩치가 은행계정을 멀치감치 추월한 것이다. 불과 2년전 투신수탁고의 2배이상이던 은행수신이 이제는 투신권의 92% 수준으로 전락한 셈이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
기업의 자금 조달 측면에서 보아도 은행권의 몰락과 자본시장의 비중 확대 현상은 분명하다.
금융기관의 기업대출은 97년 67조원 증가했으나 98년에는 오히려 25조5,000억원 감소했다. 반면 기업의 유상증자와 공개실적은 97년 3조5,000억원에서 98년에는 14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비약적인 자본시장 발전의 배경에는 금융위기 이후 일반화된 은행의 신용할당 현상에 따른 자금흐름 변화와 초유의 저금리가 자리하고 있다.
은행권은 금융위기 이후 신용이 좋은 기업에게만 대출을 해주고 신용이 나쁜 기업에게는 대출을 회수하는 「신용할당」을 통해 추가적인 부실발생을 억제했다. 하지만 신용있는 기업은 회사채 발행과 증자 등 더 낮은 코스트로 자금을 조달할수 있는 직접금융으로 눈을 돌렸다.
은행에 와서 돈을 빌리자고 떼를 쓰는 기업은 부실기업들이지만 이들에게 돈을 줄 은행은 없었다.
그래서 은행들은 남는 자금을 투신권에 넣어 운용했다. 공사채형 수익증권이 불티나게 팔렸고 수익증권 수탁고 증가는 채권수요를 부추켰다. 고금리 시절 발행된 우량기업 회사채가 인기였다.
그러나 98년 하반기 이후 기업의 자금수요 부진과 정책당국의 금리인하 노력에 따라 한때 30%에 이르던 회사채 금리는 7%대까지 하락했다. 이같은 금리 하락은 금융시장과 자본시장 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저금리 추세는 증시의 활황을 가져왔고 이것이 다시 기업의 직접금융비중 상승의 발판이 됐다. 주식형 수익증권과 뮤추얼 펀드의 기적과도 같은 성장도 저금리 때문에 가능했다.
금융위기 이후 급성장한 증시의 몸집은 시가총액과 일평균 거래대금에서 알수 있다.
지난 96년말 상장주식의 시가 총액은 117조원, 금융위기 직후인 97년말에는 70조원이었다. 지난 6월10일 시가총액은 243조2,108억원. 97년말의 3배를 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하루 평균 거래 대금도 96년 4,868억원에서 99년들어서는 2조4,448억원으로 5배 수준으로 늘었다.
주식형 수익증권 수탁고는 97년 8월말 13조원에서 지난 6월16일 현재는 26조원으로 늘었다. 98년 12월 처음 허용된 뮤추얼 펀드 설정액은 2조원을 넘어서 가파른 성장세를 계속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가 전에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금시장의 선순환고리이다.
한국의 금융산업, 자본시장에 종전의 시각으로 이해할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증시가 금융시장의 중심에 서게된 현 상황에 어두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금융시장의 발전은 정보의 투명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대상을 정하는 만큼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은 그 투명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강병호 금감원 부원장은 『우리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투명성이 증대되어서 직접금융이 활성화 되었다기 보다는 정책적 저금리 현상과 금융기관의 신용할당에 의한 금융장세적인 성격이 더 강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증시와 직접금융의 확대 배경이 바람직한 모습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투신권의 급성장은 간접투자의 대중화로 연결되어 증시의 기관화 장세를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관화 장세는 증시의 경쟁여건을 악화시켜 소수 기관투자가들에 의해 장세가 좌우, 주가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등 증시 기반의 취약화를 초래하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다.
또다른 중대한 문제는 투신권 성장이 재벌계열 투신사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어 또다른 경제력 집중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 투신 수탁액중 재벌사 계열 투신사의 비중은 52%에 달한다.
김세진(金世振) 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특히 5대 계열 투신사의 비중이 33%에 달하고 있어 펀드가 재벌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로 변질되고 기관투자자의 중립적인 의결권 행사가 불투명해지는 등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로운 과제를 동반하고 있다./우원하 기자 WH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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