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한 달이 됐다. 한미 FTA는 발효 직전까지 6년여 동안 끊임없이 정치·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지만 막상 발효 후에는 큰 무리 없이 우리 경제에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3월 대미 수출의 경우 벌써부터 관세인하의 효과를 본 듯 가격 경쟁력이 향상되는 품목을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오렌지ㆍ와인 등 일부 미국산 수입품목은 가격이 떨어졌고 앞으로 관세철폐에 따라 도소매 가격을 인하하겠다는 수입업체들도 서서히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FTA 효과가 수출 확대와 관세 철폐에 따른 소비자 후생 증대에 있다면 한미 FTA는 이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관세 인하분만큼 가격이 내려간 수입 품목이 제한돼 있어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한미 FTA 효과가 덜하고 FTA 활용법을 제대로 몰라 우왕좌왕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대미 수출, 국내 투자 관심 높아져=정부는 지난해 8월 발표한 '한미 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에서 FTA 발효 이후 향후 15년간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연 평균 1억4,000만달러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대미 수출은 연 평균 12억9,000만달러, 수입은 7억1,000만달러 증가해 총 5억7,000만달러의 무역 수지 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행히도 3월 한 달간 대미 수출 실적을 보면 이 궤도에서 크게 이탈하지는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월 대미 수출은 59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9% 증가했다. 미국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한미 FTA 발효 시점과 맞물리면서 높은 수출 증가세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합성수지(36.7%), 일반기계(42.0%), 자동차부품(12.4%) 등 관세인하로 가격 경쟁력 향상이 예상됐던 품목의 수출이 크게 증가한 것은 고무적이다. 또 앞으로 미국 경제의 회복속도가 빨라지면 한미 FTA의 수출 증대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석영 통상교섭본부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는 미국 경제가 점차 개선되는 시점에서 발효됐기 때문에 지난해 7월 발효된 한ㆍ유럽연합(EU) FTA에 비해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며 "7월 즈음이면 수치로 확인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발효 이후 한국 진출에 관심을 갖는 북미 기업들도 크게 늘었다. 4일 지식경제부와 KOTRA가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한미 FTA에 대한 투자기회 투자설명회'에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200여명의 투자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당시 현장에서만 4억2,700만달러에 달하는 투자 신고가 성사됐다. 이는 그만큼 한미 FTA가 발효 이후 한국을 아시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는 기업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관세인하 효과 진행 중이나 현장은 아직=수출 증대가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본 한미 FTA 효과라면 수입관세 철폐 또는 인하에 따라 발생하는 수입물가의 안정은 국내 소비자들이 직접 피부로 체감하는 한미 FTA 효과다. 기획재정부는 한미 FTA 발효 즉시 우리나라 수입물품의 9,061개(80.5%) 관세가 철폐돼 세 부담 경감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관세 인하가 제품의 가격 인하로 이어지면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수입협회가 15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한미 FTA 의 도소매가 인하 효과는 각각 7.0%, 6.3%(예정포함)로 분석됐다. 품목군별 도소매 가격 평균인하율은 와인ㆍ맥주(13.0%), 과일ㆍ견과류(9.6%), 육류ㆍ어류(7.7%), 주스ㆍ음료(7.0%), 화장품ㆍ향수(4.5~5.3%) 등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돼지고기를 수입하는 A사는 이미 도소매 가격을 8~9% 인하했고 오렌지를 수입하는 C사 역시 10~15% 인하했다. 악기를 수입하는 D사도 품목별로 6~8% 내외로 가격을 인하했거나 향후 3개월 내 추가 인하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가격 인하 흐름이 유통 단계를 거쳐 실제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바꾸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로 미국산 제품의 판매가 늘었지만 현장에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15일 이마트에 따르면 3월15일부터 4월12일까지 미국산 제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오렌지가 19.5%, 와인은 36.6% 매출이 증가했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오렌지 14.6%, 와인 62.5% 증가했으며 홈플러스는 미국산 오렌지 매출 비중이 80%에서 90%로 10%포인트 상승했고 와인도 12%에서 15%로 3%포인트 늘었다.
유통업계는 다만 이 같은 매출 증대를 한미 FTA의 효과와 연결 짓는 것은 이르다고 보고 있다. 최근 계속된 고물가로 저가 수입산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마트의 오렌지 신장률은 수입과일 전체 매출 신장률(24.3%)보다 9.7%포인트 낮았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FTA 효과도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마포에 사는 직장인 문모씨(33)는 "미국산 가격이 내려간다고 하는데 뭐가 얼마나 싸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전제품 등은 거의 가격 변화가 없었고 가격이 내린 오렌지나 와인 등도 인하 폭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에서 오렌지(300g)는 한 달 전 1,300원에서 1,150원으로 150원 내렸고 아몬드(300g)는 5,000원으로 동일했다. 칼로로시 레드와인(750㎖)은 8,800원에서 7,900원으로 900원 싸졌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 다른 대형마트도 비슷한 수준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격대가 높은 가전 제품 등은 거의 영향이 없고 농산물 위주로 가격이 낮아졌는데 100원 단위로 인하되다 보니 소비자들이 크게 싸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미 FTA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수입ㆍ유통 부문의 경쟁도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 경제가 한미 FTA로 인해 누리는 전체 이익을 계산할 때 수출확대를 통한 생산 측면의 이익뿐 아니라 수입가격을 낮추는 수요 측면, 즉 국내소비자의 후생 증대까지 고려했기 때문이다. 송송이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미 FTA는 현재 발효된 FTA 가운데 시장개방의 폭과 속도에 있어 파급효과가 가장 크다"며 "관세 인하효과가 소비자가 인하로 이어지도록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공정한 수입유통 질서 확립을 위한 정부 조치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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