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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녹슨 못 하나
입력1999-01-28 00:00:00
수정
1999.01.28 00:00:00
김인숙(소설가)몇년 전에 외국에서 잠깐 살았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온갖 외국풍경이 다 낯설고 진기했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신기하고 감탄스러웠던 것은 개라지 세일(GARAGE SALE)이라는 것의 풍경이었다. 중고시장에 상품으로 내다팔기에는 뭣하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잡동사니들을 모아 파는, 말하자면 개인이 여는 벼룩시장임 셈인데 여기에 정말 없는 것이 없다.
낡은 가구나 성능이 좀 떨어지는 전자제품들부터 작아진 옷, 신발, 아이들이 커가면서 쓸모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장난감과 인형들, 짝이 맞지 않는 그릇 세트, 하여간에 별별것들이 다 진열되는 데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감탄시켰던 것은 심지어는 낡아서 녹이 슨 못이나 짜투리 전선까지도 내다 판다는 것이었다.
나라면 당연히 쓰레기통에 쳐넣었을 그런 것들에까지도 가격표를 붙여서 내다팔 생각을 하는 사람의 염치도 참 뻔뻔스럽다 싶으면서도 저런 것 하나까지도 버리기 전에 쓸모를 찾아볼 생각을 하는 저들의 문화가 참 부럽다 싶기도 했다.
며칠 동안, 온집안의 가구를 이쪽 저쪽으로 바꿔놓으면서 별 수 없이 대청소를 하게 되었다. 가구를 옮기다보니 새로 필요로 하는 가구나 장식품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더 많은 것은 놓을 자리를 잃게 된 물건들이었다. 창고에 쌓아놓자니 자리만 차지하겠고 버리기에는 너무 멀쩡한 물건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가져가달라고 돈들여 광고를 낼 수도 없고 별 수 없이 버리긴 버려야겠는데 이번에는 동사무소에 가서 몇천원짜리 폐기용 딱지까지 사다 붙여 버려야한단다. 버린다는 것조차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뿐인가.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다. 몇년 째 쓰지 않고 자리만 차지 하고 있는 플라스틱 그릇들, 살 는 몇만원씩이나 주고 샀던, 그리고 아직도 흠집 하나 없는 아이의 장난감과 교육용 교구들, 누군가 가져간다면 아주 잘 쓸 것같은 의자 하나, 내게는 필요가 없어졌으나 아직 멀쩡한 키보드와 마우스, 사은품으로 받은 시계, 낡은 전화기…
대체 이것들을 어찌 다 내버린단 말인가. 쓰레기 처리비용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이렇게 멀쩡한 것들을 내다버려야한다니 죄가 되는 기분을 어찌 나만 느낄 것인가. 한때 내가 살았던 나라의 사람들도, 녹슨 못 하나까지도 팔아보려는 마음의 바탕에는 억척스러움 이전의 선의가 있었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녹슨 못이 쓰레기가 되는 대신 집 시계걸이가 되어줄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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