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청년들이 앓고 있다] 1부:위기의 세대 <4> 취업 제일주의 사회

"취직해야지 창업은 무슨… 잡스도 한국선 직장인 됐을 것"

일류대학 나올수록 대기업·전문직 강요 받아

간판 따지는 분위기에 창업 꿈꾸기도 쉽잖아

어렵게 시작했어도 자금난·유통망 등에 발목

"외국벤처 부러워만 말고 기업가정신 되살려야"



이재영(40)씨는 창업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창업을 꿈꾸며 첫 창업에 나서기까지 10년 가까이 차근차근 준비했다. 고교재학 중에는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따고 주물·사출 공장 등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졸업 후에는 신소재인 섬유강화 플라스틱을 공부하고 전기차 제조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20대의 대부분을 창업준비에 매진했다. 하지만 창업시장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이씨가 이런저런 실패를 거쳐 최근 창업한 사업에서만 날린 돈만도 60억원이나 된다. 이씨는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시작했지만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며 "우리나라는 소규모 제조업자가 창업하기 너무 힘든 나라"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취업제일주의 국가다. 이씨의 사례처럼 창업하기 어려운 사회 인프라에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취업이 제일"이라고 가르친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인물이 왜 나오지 않느냐고, 한국도 독일처럼 강한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한탄하지만 그때뿐이다. 일류대를 나올수록, 유복한 가정일수록 창업보다는 대기업 샐러리맨이나 전문직·고위공무원이 되라는 강요를 받는다. 지난달 실시된 지방 9급 공무원 공채에 17만명이 몰린 것이나 앞서 지난 4월 9급 국가공무원 채용시험에 19만명이 도전장을 낸 현실은 창업이 두려운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공직의 문을 두드리려는 이른바 '공시족'은 35만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25%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은 갈수록 줄고 벤처 정신도 사라져간다. 창업을 위한 인프라도 문제지만 학벌·직장 등 간판을 따지는 사회 분위기가 청년들을 취업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렵게 창업한다 해도 자금난, 유통망 등 네트워크, 특허소송 등 끊임없는 고비가 청년 창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창업을 꿈꾸기 어려운 나라=대한민국에서는 청년들이 창업을 꿈꾸기조차 쉽지 않다. 국민대 경영학과 4학년인 김지훈씨는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창업을 생각하게 됐다. 김씨는 "기능성 신발을 아이템으로 특허출원을 준비하며 유통망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창업을 준비하던 김씨는 집안의 반대에 먼저 부딪혔다. 어머니는 창업은 안 된다며 결사반대했다. 아버지는 김씨를 격려하면서도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라고 조언했다. 또래 친구들은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업을 선택한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창업을 결행한 후에도 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이재영씨는 2007년 독특한 소재와 디자인의 애완동물 관련용품을 아이템으로 창업에 나섰지만 곧 자금난에 부딪쳤다. 소량의 시제품을 제작해주는 업체는 많았지만 한번 만들 때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시제품을 개선하기 위해 수차례 반복하면서 창업자금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이씨는 "창업자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담보나 보증이 없으면) 사업전망이나 기술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창업보다 현상유지가 더 힘들어=창업을 유지하는 것은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가까스로 시제품을 만든 이씨가 대량생산을 할 때는 수억원이 들었다. 물건을 찍는 금형 틀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다. 포장재는 무조건 1만장 이상 대량으로 주문해야 한다. 당장 주문비용은 물론 제품과 포장재를 저장할 창고와 유지비도 필요했다. 아이디어만 구상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이다. 미국 월마트에서 제품구매 의사를 밝혔지만 운송비가 발목을 잡아 결국 수출을 포기했다.

결정적으로 이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특허소송을 둘러싼 갈등이다. 이씨는 디자인 특허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투자계약서 등에 특허권 사용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투자자와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이미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은 상태라 배상을 받기도 어렵다.

◇창업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우리나라 청년창업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8년 전체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의 58%를 차지했던 20~30대는 2012년 11.6%까지 쪼그라들었다. 청년창업 기업은 비교적 생존율이 높지만 10년이 지나면 절반이 사라진다. 생계형 창업이 아닌 지식·기술 및 디자인 등 혁신형 창업 비중은 47%로 미국(73%), 일본(71%), 독일(75%), 프랑스(83%)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제대로 준비한 창업이 드물고 창업 이후 유지가 더 어려운 것이 대한민국 청년창업의 현주소다.

창업에 나선 청년들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창업환경보다 창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양석원 은행권 청년창업재단 사업운영팀장은 "우리나라의 창업환경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문제는 창업문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외국 벤처 기업가는 부러워하면서 한국 기업가는 폄훼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면서 "창업자는 물론 정부 당국자, 교육자, 언론까지 창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