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수차례 한국 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지목했다.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니었지만 환율은 출렁거리고 대외신인도는 금이 갔다.
'대한민국=현금자동입출금기(ATM)'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당시 외환정책을 담당했던 전직 고위관료는 10일 "기사가 나온 후 국내 증시가 하락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해외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왔다"며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됐는데 대부분 단기수익을 노린 돈이었다"고 회고했다.
자본에도 국적이 있다.
2008년의 경험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해외 투자가들은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원하고 기업이나 해당 국가의 중장기 성장에는 관심이 적다.
최근 삼성물산을 공격하고 나선 벌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그 극단에 있다. 아르헨티나를 부도까지 몰고 간 데서 봤듯이 앞에서는 경제정의를 내세우지만 뒤에서는 이윤만을 목적으로 기업활동을 방해하거나 소송을 남발한다.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사석에서 대형 인수합병(M&A)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대에 "순진하게 우리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메가뱅크가 나오면 자신들의 입지와 시장이 줄어 문제 삼는 것"이라며 "외국인 주주들은 한국에서 당장 돈 벌고 배당하라는 것이지 중장기적 투자는 싫어한다"고 해외자본의 속성을 짚었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 사태를 계기로 우리 핵심 대기업에 대한 경영권 방어제도를 조속히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이번 사태 이전에도 2003년 SK의 소버린 사태와 헤르메스펀드의 삼성물산 공격, 칼 아이컨의 KT&G 경영권 분쟁사건이 있었고 그때마다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을 방안이 논의됐지만 유야무야됐다.
2010년에는 '포이즌필' 도입이 구체적으로 검토됐지만 국회 논의과정에서 무산됐다. 현 정권 들어서는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이 같은 보호대책은 금기어로 취급되기도 했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2009년부터 정부도 경영권 방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법무부가 나서 포이즌필을 홍보하기도 했다"며 "삼성물산 사태를 계기로 재계에 대한 색안경 없이 진짜 필요한 대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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