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의 '코스(KHOS)'매장. 제품을 둘러보는 젊은 고객들 사이로 능숙한 중국어 발음이 흘러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매장 고객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 고객을 응대하는 20대 여성 직원도 한족 출신 중국인이었다. 롯데백화점이 국내 동대문 디자이너 등을 모아 자체 브랜드로 운영 중인 이 편집숍은 중국 톈진(天津)에 1, 2호점을 먼저 연 뒤 호응에 힘입어 지난해 영플라자가 재개점할 때 한국에 '역수출'됐다. 코스는 지난해 영플라자 신규입점 브랜드 중 국내외 고객을 통틀어 매출 1위를 달성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매출의 30% 이상을 20~30대 중국 여성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고객에게서 얻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 고객들의 정서를 브랜드 배치나 인테리어ㆍ서비스 등에 담지 않고서는 성장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며 "백화점들이 어느 매장에나 있는 비슷비슷한 브랜드로는 차별화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변신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고객들의 달라지는 소비추세를 겨냥해 '환골탈태'를 시도하는 백화점의 최대 주요전략은 '길거리 브랜드 모시기'다.
동대문시장 등에서 활약하는 신진 디자이너는 물론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명동 등지의 유명 거리숍을 백화점에 전격 영입해 천편일률적인 매장구성에 다양한 개성을 입히면서 백화점을 외면해온 고객들의 발걸음을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브랜드는 기존 백화점 입점 브랜드보다 제품 가격이 저렴하고 물량회전도 빠른 편이어서 '글로벌 SPA(제조ㆍ유통 일괄화 의류)의 대항마'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길거리 브랜드 중 다수는 오랜 영업에 기반한 편집숍으로 20~30대와 중장년 고객에게 두루 인기"라며 "해외 SPA 브랜드보다는 20~30% 비싸지만 품질은 백화점 수준으로 한수 위여서 (함께 입점한) SPA 브랜드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10월 재개점한 본점 영플라자는 매장 간 외벽을 허물고 의류ㆍ화장품ㆍ잡화 등 다양한 상품군을 한층에 자유롭게 분산 배치해 층 전체를 '길거리 상권'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형태로 연출했다. 홍대 '카시나', 가로수길 '라빠레트', 명동 '스파이스 컬러''스마일마켓' 등 유명 길거리 브랜드숍이 모두 들어왔고 '마리스토리즈' '엘블룸' 등 입소문이 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와 온라인쇼핑몰 '스타일난다' 등이 가세했다.
이 밖에 롯데는 신진 디자이너 편집매장을 통해 발굴한 '팬콧' '3QR'를 10여개 브랜드 매장으로 키워냈으며 동대문 디자이너 편집숍 '코스'의 경우 매장개설 3개월 만에 4호점 오픈까지 성사시켰다.
신세계백화점은 동대문 브랜드 '위드베이스'의 단독매장을 열면서 거리 브랜드 확충에 나섰다. 지난 2011년 단독매장을 연 지 1년이 안 돼 강남점 영캐주얼 부문 5위권에 진입,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 신세계는 이어 지난해 7월 가로수길의 핸드백 브랜드 '힐리앤서스'를 오픈했고 지난해 2월과 3월에는 가로수길 편집숍을 모은 '신진 디자이너 슈즈 편집매장'과 '신세계앤코 컨템포러리 캐주얼' 매장을 각각 열었다. 이 중 힐리앤서스는 지난해 말 국내 거리 브랜드 중 최초로 롯데면세점에 둥지를 틀어 업계의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현대백화점도 유플렉스 목동점ㆍ무역센터점 등에 토종 편집숍 브랜드인 '에이랜드(A-land)'를 선보여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신진 디자이너 핸드백 브랜드인 '뽐므델리'를 전격 오픈, 한층 다양해지는 소비수요에 대응하기도 했다.
이 밖에 백화점 3사는 길거리 브랜드 선발을 위한 신진 디자이너 영입전도 매년 정례화하기로 했다. 롯데가 지난해 6~7월 '제1회 패션브랜드 공모전'에서 5개 거리 브랜드를 선발했고 현대는 9월 '제1회 신진 디자이너 공모전', 신세계는 10월 '협력회사 입점박람회'로 각각 50개, 8개의 거리 브랜드에 문호를 개방했다.
업계 관계자는 "길거리 브랜드 열풍에 힘입어 고가 수입품 일색이던 백화점 편집숍이 중저가로 전환되는 분위기"라며 "보다 다양해지는 소비자들의 추세에 부응해 불황기 백화점 업계에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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