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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질 리포베츠키 지음 '패션의 제국'

『패션은 우리 사회를 조종한다. 유혹과 덧없음은 반세기도 안 되어서 현대 집단생활의 조직원리가 되었고, 우리는 시시하지만 지배적인 것에 의한 사회 안에서 살고 있으며, 수세기나 된 자본주의-민주주의-개인주의의 많은 세속적인 사건 중 마지막 고리 안에 살고 있다. 이 사실에 우리는 압도되어야 하는가?』「패션의 제국」(문예출판사 펴냄)의 저자 질 리포베츠키는 서문에서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리포베츠키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패션의 시대」 , 「유행의 제국」으로 규정한다. 이 시대에는 역사의 종언도, 이데올로기의 종언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패션의 시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기술의 지배를 받고 이성에 의해 정복된 시대가 어떻게 해서 부조리로 가득찬 패션의 시대가 될 수 있는가? 소비충동적이고 카멜레온 같은 욕망과 덧없는 감각들이 만들어낸 근대적인 흐름은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리포베츠키는 일단 「패션인」을 신개인주의 인간유형으로 파악한다. 그는 신개인주의를 다른 말로 경박스런 개인주의, 네오나르시시즘적인 개인주의, 쾌락주의적인 개인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유형에 속하는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물건을 사지 않는다. 패션인은 결국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진 인간을 뜻한다. 그렇다면 패션인 그들을 지배하는 문화는 무엇인가. 바로 「덧없음」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 의해 지배되는 패션인은 새로운 것이 낡은 것과 간발의 차이밖에 없는데도 새로운 것에 집착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는 바로 「덧없음」이라고 말한다. 덧없음 외에도 공허, 가벼움, 경박스러움, 하찮음, 유혹, 사소한 차이만들기는 패션의 시대를 특징짓는 어휘들이다. 새롭고 현미경처럼 미세한 차이를 작동시키는 후기자본주의를 저자는 바로 「덧없음의 경제」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현대는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는 소수문화의 탄생을 가져왔다는 것. 차이점을 인정하는 문화는 곧 지배적인 어떤 이데올로기도 거부한다. 개성을 압살해온 전체주의 문화도 패션의 시대에는 낡은 유산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에 집착하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남을 흉내낸다. 패션의 시대는 다양성이 만발하면서 곧 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시킨다는게 리포베츠키의 진단이다. 덧없음에 빠져든 현대인은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비교적 무관심하고 관대하다.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민주주의에 접근할 가능성이 더 생기고, 집단들이 서로 격리될수록 사회적 통일성은 보장되며, 개인들이 서로에 무관심할수록 상대편의 삶에 덜 개입하게 되고, 그럴수록 관용이 생기며, 사회적 갈등은 이완되고 중재되어 간다는 것이다. 패션이 여기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리포베츠키는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루마니아계 젊은 철학자로 프랑스 68혁명 세대(푸코, 데리다등)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학자로 대중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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