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300개, 한국 23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한 중소기업을 뜻하는 히든챔피언의 숫자다. 전 세계 2700여 개 히든챔피언 중 절반을 차지하는 독일의 강소기업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우토반과 제철소를 벤치마킹했듯이 50년이 흐른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강소기업 육성과 산학연 협조체제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딱히 뾰족한 해법은 없는 모양이다.
다음날인 3월27일. 산업통상자원부 윤상직 장관은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과 양국간 산업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국 중소기업의 공동R&D 지원을 위한 전용기금 신설과 양국 정부의 국장급 산업기술협력협의체의 정례적 개최 등이 이번 양해각서의 주요골자다. 이번 체결로 금년부터 10개 과제를 대상으로 3년간 1억원씩 양국 중소기업의 공동기술개발이 지원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체질을 구조적으로 혁신한 고속도로와 제철소 건설과 같은 임팩트는 기대하기 힘든 그림이다. 물론 WTO체제하에서 불법보조금의 예외조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원책이 연구개발과 인력양성 등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심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양국 정부간 협의체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방안들이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저버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00과 23이라는 극명한 수치에서 보여지듯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은 지금까지의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틀을 깨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여전히 높기 만한 진입장벽을 최소화하고, 중복성 문제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선행연구에만 초점이 맞춰진 과제기획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너무도 산적했기 때문이다. 공급자 위주에서 정책의 수요자 중심으로 국가 R&D사업의 전면적인 개편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독일 강소기업의 공통점은 바로 세계 최고의 품질이다. 미래를 선도할 혁신적인 신기술개발도 중요하겠지만,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품질이기 때문이다. 페이퍼 상에서만 이루어지는 장밋빛 청사진이 아닌 생산성을 높이고, 불량률을 줄이기 위한 공정개선 등 품질개선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눈높이에서 기획되는 R&D과제의 발굴 및 확산이 아쉬운 것도 그 때문이다.
본지가 주최하고 중소기업중앙회, 백상경제연구원, 서울경제TV가 후원한 '2014 중소기업품질대상'에 선정된 기업들이 하루빨리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안광석 서울경제비즈니스 기자 busines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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