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 세계 산업의 지형도를 바꾼 스타 최고경영자(CEO)들을 배출한 미국 실리콘밸리. 이곳에서는 실패를 '경험과 자산'으로 인식한다.
사업경험이나 노하우가 없는 청년기업가들이 창업해 한번에 성공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공한 벤처기업의 평균 실패 횟수가 2.8회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두번 실패한 기업은 투자대상 1순위에 오른다. 실패를 통해 혁신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중소기업청(SBA)에 따르면 창업 1개월 내 흑자를 내는 비율은 첫번째 창업기업의 경우 34.1%에 머무르지만 한번 실패를 경험한 뒤 재창업한 기업은 55.4%를 기록했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실패한 기업이라도 도덕적 문제만 없으면 다시 기회를 주는 실리콘밸리의 패자부활 모델이 실리콘밸리의 건전한 벤처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연방도산법도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를 경제적으로 새 출발(fresh start)시킨다'는 것이 주요 목적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경제적으로 파산한 채무자를 처벌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활동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희생된 피해자로 본다. 따라서 도산절차는 채무자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제공,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다시 편입시키기 위한 절차로 간주된다. 기업이 실패할 경우 경제적ㆍ사회적 재기의 기회를 모두 차단하는 한국의 파산법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를 두고 리처드 돕스 맥킨지글로벌연구소 소장은 "미국에서는 실패하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패에 관대한 미국의 분위기 덕분에 실리콘밸리는 일찍부터 미국 경제를 이끌어오는 성장엔진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두뇌'인 스탠퍼드대 출신이 1930년대 이래 세운 기업은 3만9,900곳에 달한다. 이들이 현재까지 벌어들인 총 수익은 2조7,000억달러(약 2,979조4,500억원)로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인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2조7,120억달러와 비슷하다. 이들이 창출한 일자리 숫자만도 540만개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내에서도 제2의 벤처붐 조성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ㆍ성남하이테크단지ㆍ죽전디지털밸리ㆍ광교테크노밸리 등을 아우르는 지역에 한국형 실리콘밸리인 'K밸리'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또 1990년대 이스라엘에서 벤처창업의 전성기를 이끈 '요즈마펀드' 등 이스라엘의 투자창업 모델이 7월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벤처기업 육성이 중요하다는 게 현 정부의 인식.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패 기업인의 재기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되지 않는 한 벤처창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실패 기업인이 재창업하거나 재기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의 마련 없이 지금처럼 정부 정책이 벤처기업과 창업기업에만 쏠려 있을 경우 기업의 추가 성장이 쉽지 않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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