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신라면배는 그 독특한 진행방식으로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 왔다. 이기면 계속해서 두어 나가는 녹다운 방식의 이 동양3국 단체대항전은 언제나 큰 인기를 끌었다. 청소년 기사들은 이 대항전의 대표로 선발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고 실제로 동양3국의 많은 신예들이 이 기전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뤄시허도 여러 차례 이 기전의 대표로 출전해 왔다. 제1회에는 5명의 중국대표 가운데 제4장으로 출전했으나 첫 대국에서 일본의 노장 구도9단을 꺾어 1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두 번째 대국에서 무명이던 한국의 김영삼4단에게 대패하여 스타일을 구겼다. 1년 연상인 창하오9단이 한국의 조훈현과 유창혁을 꺾으면서 3승을 올린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제2회때는 출전권을 얻지 못했으나 제3회에선 제4장으로 출전, 3연승을 거두어 모처럼 연승보너스 1,000만원을 타는 쾌거를 보였다. 제4회에는 주장으로 추대되는 영광을 얻었으나 이창호에게 패하여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제5회땐 출전선수 선발전에서 탈락하여 나오지 못했고 제6회에 모처럼 다시 대표로 선발되었다. 창설때부터 5년 연속 우승을 기록한 한국대표단은 제6회 대회의 전반에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다. 한종진5단, 안달훈6단, 유창혁9단이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었다. 제2장으로 나선 최철한9단이 모처럼 중국의 펑첸5단을 격파하고 1승을 기록했으나 일본 대표로 나온 조치훈9단에게 저지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팀은 이창호 하나만 남고 일본팀은 3명이 남고 중국팀도 3명이 남게 되었다. 최철한에게 이긴 조지훈이 맞이한 다음 상대가 중국팀의 3장 뤄시허였다. 뤄시허의 백번. 뤄시허가 백10으로 붙이는 독특한 취향을 들고나온 데서 서반 격전이 벌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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