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인 A씨는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며칠 후에 방통위의 앱 공모전 지원접수를 마감하는데, A씨가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모자라는 지원자를 채우기 위한 전화나 메일을 받아봤다는 개발자는 A씨 외에도 많다. A씨는 "공모전별로 선발 기준도 큰 차이가 없어 중복 응모하면서 상금만 노리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며 "결국 정부에서 돈만 낭비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앱ㆍ서비스 공모전과 창업지원 사업이 쏟아지면서 '부실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올해 상반기에 국내에 한해 참가신청을 받은 공공기관 주관의 앱 공모전만 최소 11개다. 이들 공모전에 걸린 상금은 총 4억원 규모로, 상금 이외에도 대부분 해외 연수 기회나 개발 공간ㆍ마케팅 지원 등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 관련 협회나 지자체에서도 '스타트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공모전 이외의 창업 지원 사업, 민간 기업의 사업까지 더하면 이 분야에서 풀리는 자금은 적지 않은 규모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일회성 이벤트의 부작용과 예산 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씨는 "일단 공모전 자체가 너무 많고 선발된 앱도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다"며 "유행처럼 스타트업 지원사업이 이뤄지는데 실제 성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개발사 대표인 B씨는 "코트라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응모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하반기에 도전할 만한 공모전과 프로그램을 찾아보다가 엇비슷한 행사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공모전과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심사위원ㆍ멘토, 해외 연수나 마케팅 지원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또 다른 개발사 관계자는 "개발이나 창업에 대해 잘 모르는 교수님이 멘토로 정해져서 별 도움이 안 됐다"고 전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타트업 관련 프로그램은 주요 정부조직이나 몇몇 IT 기업 위주로 진행됐다. 하지만 새 정권 출범과 함께 '창조경제' 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진흥원, 중기청, 방통위가 각각 따로 스타트업 육성ㆍ지원 프로그램이나 공모전을 꾸리는 경우다.
부실한 프로그램이 난립하면서 상금만 노리는 '공모전 헌터'들도 생겨나고 있다. 아이디어만으로도 응모가 가능한 공모전일 경우가 심각하다.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운영해 온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국민 세금으로 주어지는 창업 지원금을 실제 서비스 개발이 아니라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등의 경우도 있다"며 "추적조사나 다른 프로그램에 중복 응모했는지 확인하는 절차 등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들어 각종 스타트업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경쟁력 없는 프로그램은 자연히 퇴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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