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찰의 KT ENS 수사 발표가 나오면서 가장 큰 대출자인 하나은행이 안갯속에 휩싸이고 있다.
그간 숱하게 거론됐던 부실한 여신심사과정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무엇보다 이번 악재가 연임에 들어가는 김종준 행장의 앞길에 시한폭탄과 같은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자칫 이르면 이달 말에 예정된 미래저축은행 관련 당국의 하나은행 제재와 맞물려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허술한 내부통제…내부 공모 여부에 촉각=하나은행이 이번 사기 대출에 연루된 대출 규모는 총 1조92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의 미상환된 대출금으로 사실상 피해금액인 1,624억원이 포함된 실제 대출해준 총액이 드러난 것. 조직적인 사기 대출이라고 면피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다.
여신 심사 및 감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빠질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 직원이 사기 대출 연루자를 도운 것으로 확인되면서 은행 내부 공모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는 점.
그간 금융계 안팎에서는 대기업의 담보가 믿을 만하다 해도 대출 규모상 은행 직원이 사기 대출에 연루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경찰도 대출한도 승인 규정 준수 여부와 매출채권담보의 진위 여부 확인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물론 하나은행은 내부 직원의 연루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외상매출채권의 발생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잘못은 있지만 KT ENS가 법인 인감을 허술하게 취급하는 등 경중으로 따지면 KT 측의 과실이 훨씬 크다고 본다. KT ENS가 법정관리까지 신청한 마당이라 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지배구조 영향 없을까=경찰은 사기 대출 발생 시점을 2007년 중반 이후로 봤다. 이 무렵부터 진성매출에 사기가 얹어졌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입장에서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은행장으로 재직할 무렵과 일부 겹친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하나은행은 물론 하나금융그룹 전체로도 우환거리로 번질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다.
20일 주총을 통해 김 행장의 연임이 시작되는 하나은행의 부담도 크다.
김 행장이 취임한 후에도 사기 대출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김 행장의 경우 캐피탈 사장 재임 당시 미래저축은행 투자 건에 대한 당국의 제재도 코앞에 당도한 상황이다.
다만 현재까지 정황만 놓고 보면 김 행장에 대한 제재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하나금융이 김 행장의 연임을 결정할 때 이미 당국과 물밑 접촉을 했고 별문제가 없다는 언질을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김 행장 연임 소식이 전해지고 일부 관료들이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주목하는 이도 적지 않다.
금융계의 한 고위 인사는 "하나금융으로서는 이래저래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며 "관행적으로 해온 대출에 탈이 난 것인데 내부 가담자가 있을 경우 일파만파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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