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상장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개설한 중기 전용 회사채시장이 개장 100일이 넘도록 전혀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전용 회사채시장인 적격기관투자가(QIB)시장은 지난 5월2일 문을 연 후 단 한 건도 회사채 거래가 이뤄지지 못했다. 회사채 발행도 단 3건에 그쳤다. 그나마 비상장 중소기업이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은 에스엔텍 한 곳뿐이고 이것도 한국투자증권이 전량 인수한 뒤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QIB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은 투자자나 발행기관이 엄격히 제한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QIB시장은 비상장 중소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개설된 것으로 투자자가 전문투자자 가운데 금융업자와 은행∙연기금 등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1조에 명시된 곳으로 제한돼 있다. 공격적 투자 성향의 벤처캐피털 등은 투자자 범위에서 제외돼 있다. 또 발행기관도 자산 5,000억원 미만의 비상장사로 한정해 정작 투자자들이 원하는 중소기업의 회사채 발행길도 막힌 상태다.
한 증권사의 고위 관계자는 "QIB시장은 좋은 취지와 달리 애초부터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며 "투자자나 발행회사 범위가 너무 제한돼 있어서 시장이 활성화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QIB시장이 무용지물로 전락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회사채 발행이 힘들어진 데다 은행대출 문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설상가상 증시마저 흔들리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저축은행이나 사채 등으로 급전을 마련하고 있는 처지다.
실제로 올 들어 이달 9일까지 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122조3,61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우량 회사가 발행한 물량일 뿐 투기등급 BB 이하 중소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단 915억원으로 전체의 0.074%에 그치고 있다.
증권사의 한 채권 담당 고위 관계자는 "이미 국내 회사채시장은 우량 기업들이 독식하는 구조로 정크본드의 발행이나 매수가 사라진 지 오래된 상황에서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은행 등 기관투자가에 참여하라는 자체가 무리가 있다"며 "금리 자체가 크게 높아지거나 세제 혜택을 주는 획기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한 관계자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벤처캐피털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 외국 금융회사 등 실질적 투자가 가능한 곳으로 투자자 자격 범위를 넓혀줘야 한다"며 "일부 대형 건설회사와 같이 자산 규모는 크지만 신용 문제로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발행기업 요건 완화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금융 당국도 QIB시장 제도 관련 개선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투자협회 등에서 투자자나 발행회사 범위를 한층 확대해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며 "여기에 앞으로 개설될 코넥스(KONEX)에서 거래될 기업의 경우 QIB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상장이라는 범주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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