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TV수신료 1,500원 인상안을 의결하면서 81년 이후 2,500원으로 묶여있던 KBS 수신료 인상 문제가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들어섰다. 방송위원회의 검토와 국회 통과 절차가 남은 가운데, 방송위가 이 과정에서 가부(可不) 결정을 할 권한이 없다는 점과 범여권이 별다른 의견개진을 하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해결의 키는 한나라당이 갖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작 한나라당은 수신료 인상에 원칙적으로 ‘결사 반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수신료 인상이 순조롭게 이뤄질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 보인다. 여기에 유료방송업계를 중심으로 KBS의 1,500원 수신료 인상안이 결과적으로 방송산업 전체의 발전을 도외시한 처사라는 지적도 난제다. 공영방송 재원 마련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수신료 소폭 인상만이 이뤄질 경우 결국 지상파의 독과점만 심화시킬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KBS가 넘어야 될 승부처다. “청사진 내놓고 정면승부해야”=일부 시민단체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KBS의 이번 수신료 인상안이 ‘자사 잇속만 챙기는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영방송의 근간을 살리려면 현행 수신료의 2배 이상의 대폭적인 인상이 필요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체계적 계획과 내부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데도 불구하고 여론의 뭇매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폭 인상이라는 편법을 통해 광고수입은 포기하지 않는 이중적 행보를 보인다는 것이다. KBS는 수신료를 인상하면 광고수입 1,000억원을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지난해 KBS 광고수입 전체(6,532억원)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수신료 인상 뒤 KBS가 마음만 먹으면 1,000억원은 언제라도 다시 거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면피성 약속이라는 지적. 차제에 수신료 인상 논의와 함께 공영방송이 과연 광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밑바닥부터의 검토가 필요하는 것이다. 현행 47%에 달하는 KBS 광고 수입 비중을 30%대로 줄이겠다는 목표도 아직은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수신료 수입이 늘어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 광고 수입은 가만히 있어도 비중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위해선 사실 월 1만원 이상의 수신료를 받아야 하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KBS가 1,500원 인상안만 내세우며 광고수입 기득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저의냐”며 “재원이 필요하면 떳떳하게 요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내부 개혁에 들어가겠다는 걸 구체적 청사진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도 고비=수신료 인상과 함께 추진하겠다는 난시청 해소 역시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수십년간 케이블TV에 의존하며 난시청 개선을 사실상 포기해온 KBS가 갑자기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건 지상파 멀티모드서비스(MMSㆍ현행 한 개 채널용 주파수에 여러 개의 방송채널을 내보내는 디지털기술)를 위한 상업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케이블 업계 한 관계자는 “MMS로 KBS가 채널을 4~8개로 늘이면 새로 생긴 채널에는 기존 케이블TV가 해왔던 지상파재방송을 자신들이 직접 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간 포기했던 플랫폼의 역할을 되찾으려 할 의도가 짙게 깔려있는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야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은 원칙적으로 ‘절대 불가’다. 현재 2,500원 수신료가 ‘아프리카 후진국 수준’의 낮은 가격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KBS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하겠다는 약속과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기식 인상안을 내세우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문광위 간사인 최구식 의원은 “수신료 인상과 함께 KBS가 하겠다고 내세운 약속을 납득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되겠냐”며 반대 입장을 제시했다. KBS가 제시한 약속은 수신료 인상 이전에 당연히 수행했어야 할 공공기관의 의무인데 마치 수신료를 인상해 주면 인심 쓰듯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처사라고 최 의원은 지적했다. 물리적인 정치 일정으로 봐도 KBS의 희망이 당장 현실화될 여지는 불투명하다. 방송위원회의 법적 검토는 빨라야 8월에나 마칠 수 있다. 9월 정기국회에 이 문제가 넘어와도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를 어떻게 피하냐가 관건이다. KBS가 거대 방송사로 여론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대선 정국이라는 혼란한 상황이 KBS에게 어떤 형태로 작용할지 아직은 점치기가 쉽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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