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쓰러져간 ‘알짜배기’ 한국 기업들은 외국계 투자은행에 더 없이 좋은 ‘사냥감’이었다. 그들의 돈 버는 방법은 간단했다. 부실화된 채권이나 부동산ㆍ기업 등을 싼값에 산 뒤 정상화시켜 몇 배의 이윤을 챙기고 파는 식이었다. 론스타ㆍ모건스탠리ㆍ골드만삭스 등으로 대표되는 외국계 펀드들은 자산관리공사(KAMCO)와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수십 조원에 이르는 부실채권을 거둬들여 짭짭한 수익을 챙겼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헐값에 내놓은 부동산은 물론 경제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제일은행ㆍ외환은행 등 금융회사도 모두 이들의 몫이었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지 8년이 흘렀지만 외국계 펀드가 남긴 ‘생채기’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국정감사 때마다 ‘헐값 매각 시비’는 단골 메뉴가 됐으며 갈수록 비대해진 해외자본이 국내 금융산업의 공공성을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비등해졌다. 그러나 이제 해외투자가 무조건 국부유출이라는 생각은 접을 시기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창형 서울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빚을 갚는 과정에서 원하지 않는 소유권이 과도하게 넘어간 자체를 부정만 하기보다 당시 경험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해외 부실채권시장이 경제외교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계 펀드, ‘부실채권-부동산-금융’ 등 무차별 인수=돈 냄새를 맡는 후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발달된 해외 펀드들도 하루 아침에 프로가 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지난 80년대 중남미 경제위기와 오일쇼크, 90년대 초 저축대부조합(S&L) 사태 등을 거치면서 엄청난 차익과 노하우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이후 외환위기를 맞은 아시아 지역에 뛰어들어 ‘부실채권-부동산-금융’ 순으로 한발한발 영역을 확장해갔다. 모건스탠리는 90년대부터 일본의 부동산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으며 최근에는 중국에서 부동산과 은행 지분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칼라일그룹, JP모건 에쿼티파트너스 등 사모펀드(PEF)들도 최소 1조원대 이상의 펀드를 조성, 중국 부실채권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여름 베이징 사무소를 폐쇄하며 중국 부실채권시장에서 후퇴를 선언한 론스타펀드는 전체 투자액의 75% 이상을 한국과 중국에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 금융기관, 투자실적 미미=외국 투자은행에 비해 한국 금융회사들의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부실채권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좋은 투자기회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돈이 된다’는 확신은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 현지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곳도 삼성ㆍ현대ㆍ우리투자증권 등 3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국 시장에 뛰어든 곳은 벤처캐피털인 KTB 네크워크와 현대증권 정도다. KTB는 지난해 10월 중국 창업투자회사(UCI)와 공동으로 중국기업투자펀드를 조성한 데 이어 올 7월에 중국의 창청(長城)자산관리공사로부터 부실채권 2억달러어치를 670만달러에 인수했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투자실적은 아직 미미하지만 내년부터는 투자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KAMCO가 조성할 공동펀드에 민간 금융회사는 물론 사모투자전문회사들도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정재룡 전 사장은 “KAMCO가 구축함이 돼서 나가야만 민간 금융회사들이 뒤따라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무 KAMCO 해외사업부 부장은 “지난 4년 동안 부실채권 투자중개와 컨설팅 위주로 해외사업을 해왔는데 부실채권 투자ㆍ출자가 허용되는 내년이 해외투자 업무의 새로운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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