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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원단을 미국이나 중동ㆍ동남아 등지로 수출하는 중소기업 '투월드(ToWorld)'는 수출물량이 점차 늘면서 환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을 통한 환헤지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의 잘나갔던 기업들이 키코(환헤지금융상품ㆍKIKO)로 엄청난 경영난을 겪고 심지어 도산하는 사례도 봤기 때문이다. 윤정애 대표이사는 "우리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섬유원단 분야에서 더 큰 규모의 수출을 하는 기업도 이제는 금융권을 통한 환리스크 관리는 하지 않는다"면서 "대신 수출대금이 들어오면 환율 흐름을 본 뒤 적당한 시점에 직접 환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스스로가 환리스크 관리를 손수 하고 있다는 것인데 수출 중소기업들이 여전히 키코 트라우마(외상)에서 벗어나고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역으로 시장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환변동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부실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중기, 20~30%만이 환리스크 관리…키코 사태 이후 급감=중소기업들에 대한 환위험 관리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관련 업체의 진단도 비슷하다. FX코어솔루션의 정교설 팀장은 "수출 중기 가운데 환리스크가 있어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기업인데도 20~30%만이 파생상품 거래 등을 통한 환헤지를 하고 있다"면서 "키코 사태 이전에 50~60%가량의 기업이 환헤지를 했던 것과 비교하면 급감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아무래도 키코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면서 "지금이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어 괜찮지만 대외변수로 환율이 요동을 칠 경우 피해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 역시 키코 같은 구조화된 파생상품 출시를 꺼린다. 대체로 선물환 거래를 중심으로 환율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다. 기업은행의 경우 중소기업의 환헤지를 위한 선물환 거래 건수가 지난해 9,000여건, 올해 8월 말 현재 6,000건이다. 기업은행과 거래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20만개에 육박한 점을 감안할 때 대부분은 환헤지를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수출입은행도 비슷하다. 지난 2007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의 선물환 거래는 110건에 4,400만달러에 그쳤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그만큼 환헤지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 팀장은 "시중은행의 경우 금융감독당국이 키코 사태 이후 대규모 파생거래를 제한한 탓도 있지만 환헤지 상품을 팔아왔던 시중은행들 스스로가 환헤지 상품 출시에 소극적인 탓도 있다"고 말했다.
◇선물환 거래 감소…대기업만 거래=환헤지를 위해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선물환이다. 선물환은 무역업체들이 미래 수출입대금(달러)의 가격변동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리 환율을 고정시키는 계약을 뜻한다. 국내 기업의 선물환 거래는 2008년 2,112억달러에 달했지만 키코 사태 이후인 2009년에는 1,207억달러, 2010년에는 1,737억달러로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2,108억달러까지 늘기는 했지만 대부분 수출 대기업들의 거래로 파악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의 선물환 거래는 과거만큼 그 비중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키코의 아픔이 여전해 선물환 거래마저 꺼린다는 얘기다.
◇환율 변동 심화 땐 수출 중기 리스크 그대로 노출=다행히 최근 들어 환율은 비교적 박스권 장세를 유지해 환리스크는 높지 않다. 실제로 원ㆍ달러 환율은 지난해 9월22일 1,193원의 고점(1년 기준)을 형성한 뒤 1,104~1,184원의 박스권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의 특성상 환율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더욱이 최근 수출이 고꾸라지고 있고 중국ㆍ유럽 등의 경기가 좋지 않아 실물경기의 위축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환율이 불안해지고 환헤지를 하지 않는 중소기업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할 때 수출 중기는 특히 대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제한적인 형태로나마 환위험을 줄일 파생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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