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인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가 2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여신금융협회 및 카드 업계에 1,800여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다. 밴 수수료 체계 개편과 리베이트 금지 확대 등 다양하고 복잡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요지는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의 후폭풍으로 밴(VAN·부가가치통신망) 대리점 업계가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는 결제 단말기를 가맹점에 직접 설치하고 전표(영수증) 수거 등의 업무를 하는 밴 대리점들의 대표조직인데 이들의 주 수익원인 '전표 매입비용'이 카드 가맹점 수수료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카드 산업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카드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카드 산업의 뒷면에는 밴사와 밴 대리점 등 소비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산업 생태계'가 존재한다. 카드 산업 업황 부진과 더불어 산업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직격탄을 맞게 된 이들 업체는 수익성 악화에 따른 줄도산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 최대 0.7%포인트 인하를 통보 받은 카드사들은 당장 비용 절감에 나섰다. 첫 번째 작업은 카드사가 밴사에 지불하는 밴 수수료와 전표 매입 수수료 인하. 나이스정보통신과 한국정보통신·KIS정보통신 등 13개 업체로 구성된 밴 업계는 카드사들과 수수료 정률제 협상을 시작했다. 과거에는 카드 결제가 한 건 일어날 때마다 수수료를 받던 방식에서 결제 금액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화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카드 결제 금액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률제는 곧 밴 업계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최초로 신한카드가 정률제를 도입한 가운데 KB국민카드가 최근 두 번째로 정률제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내년 1월부터 계약을 맺는 가맹점은 전부 정률제가 적용되며 기존 가맹점도 2017년 1월부터 정률제를 시행한다. 밴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의 주요 근거로 밴 수수료 인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고 나오면서 정률제를 비롯한 수수료 인하 압박이 시작됐다"며 "신한·KB 외에 BC카드 등과도 협상을 벌이고 있어 정률제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무려 5,000여개가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밴 대리점 업계는 영수증 없는 '무서명 거래 확대'에 떨고 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카드사와 가맹점 간의 별도 계약 없이도 5만원 이하 카드 결제는 무서명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무서명 거래는 밴 대리점의 수익원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전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밴사가 밴 대리점에 전표 매입 비용을 줄 필요가 없는 것. 밴 대리접 업계 관계자는 "밴 대리점이 밴사로부터 받는 수수료의 약 60%가 전표 매입 비용"이라며 무서명 거래를 확대한다는 것은 밴 대리점업 자체를 접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며 읍소했다.
카드 산업의 위기는 나아가 소비자 편익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5년으로 못 박은 부가서비스 유지 기간을 3년으로 되돌린 데 이어 업계에서도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 등 일부 회사들이 수익성이 낮은 카드 상품을 구조조정하기 시작했다. 한 카드사 임원은 "사라진 수익은 결국 어디에선가는 벌충해야 한다"며 "내년부터 출시하는 상품의 혜택을 줄이고 상시적으로 진행해온 가맹점 할인 등 마케팅도 대폭 축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윤선기자 sep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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