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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엔 변변한 전시관 없이
선진기업 제품특징 정리하기 급급
이젠 가장 큰 부스서 기술 뽐내고 기조연설자로 나서 IoT 등 전파
제품홍보·거래선 확보에도 총력
지난 1973년 여름, 금성사(현 LG전자)를 비롯한 한국 전자산업 관계자 10여명이 미국에서 열리는 CES를 찾았다. 한국 전자업계 최초의 CES 참가다. 미국·일본·유럽 선진 기업들의 기술을 어깨너머로 익히면서 막 태동하기 시작한 한국 전자산업을 조금이라도 세계에 알리려는 시도였다. 가전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도 CES 같은 해외 전시회의 가장 큰 무대는 소니·파나소닉이나 필립스가 차지하고 있었다"며 "우리는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그들의 신제품을 부지런히 찍고 특징을 정리하기 바빴다"고 회상했다.
40여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삼성전자·현대차그룹·LG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유수의 해외 전시회마다 가장 큰 전시관 중 하나를 차지하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참관객을 맞는다. 경영진은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대신 기조연설자로 나서 사물인터넷(IoT), 친환경 스마트카, 가상현실처럼 다가오는 신산업 트렌드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학생에서 선생으로 위치가 뒤바뀐 셈이다.
다음달 6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CES 2016과 바로 뒤이은 디트로이트 모터쇼 2016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CES 2016에 IoT·가상현실·웨어러블 분야는 물론 소프트웨어·콘텐츠 영역에서 다채로운 신제품을 내놓는다. 홍원표 삼성SDS 솔루션사업부문 사장은 CES 2016에서 '현실로 다가온 IoT'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로 TV 시장 지각변동을 꾀하는 LG전자·LG디스플레이는 유연한 플렉시블 OLED 디스플레이 기반의 각종 TV 신제품을 선뵌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 디트로이트 모터쇼 같은 국제 모터쇼는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전략 차종을 소개하는 자리가 된 지 오래다. 현대차 등이 완성차 시장에 처음 진입하던 1970년대에는 변변한 부스도 없이 임직원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메이저 완성차의 일원으로서 미래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것이다. 유럽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올해 현대차가 '올 뉴 투싼'을, 기아차가 콘셉트카 스포츠 스페이스와 리오(프라이드)를 선보인 것도 이런 이유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모터쇼이자 기술력을 뽐내는 자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인 'N'을 출시하고 비전 그란투리스모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특히 정보기술(IT)과 융합한 스마트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IT 전시회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는 CES 2016에서 포드·쉐보레와 맞먹는 크기의 부스를 마련하고 자율주행 기술을 시연한다. 현대차는 디트로이트에서 도요타 렉서스 등을 겨냥한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첫차 'EQ900(G90)'을 공개할 예정이다.
위상이 달라진 한국 기업은 기술 과시 외에 글로벌 전시회에서 얻는 유·무형의 수익에도 점차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예전에는 우리가 가진 기술을 홍보하려는 의도가 짙었다"며 "이제는 당장 팔 수 있는 상용화 단계의 제품·솔루션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전 세계 거래선을 확대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게 전시 참가의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LG전자·LG디스플레이는 CES 2016 참가 업체 중 가장 큰 전시관을 마련한 것 외에도 전시장인 라스베이거스 테크이스트 북쪽홀 미팅룸 대부분을 차지하고 고객사·유통사들과 만난다. 자동차 부품사인 현대모비스 임원들도 CES에서 고객사 상담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고객사 관계자를 초청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이들 기업의 주요 전시회 전시 참가비용은 회당 수백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소비자들에 인식되는 브랜드 가치가 중요한 자동차 업계에서는 모터쇼에 참가함으로써 얻는 홍보효과도 크다. 일례로 현대차가 올해 국내 최초로 실시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온라인 생중계는 네티즌 10만명이 시청했다. /강도원·이종혁기자 theo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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